책을 되새김질하다

섬살이, 섬밥상

대빈창 2024. 8. 28. 07:00

 

책이름 : 섬살이, 섬밥상

지은이 : 김준

펴낸곳 : 따비

 

김준의 갯벌 이야기(이후, 2009) / 바다맛 기행 1․2․3(자연과생태, 2013-2018) / 섬살이(가지, 2016) / 바닷마을 인문학(따비, 2020)

 

지금까지 내가 잡은 어촌사회학자 김준(61才)의 책들이다.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대여했다. 『바닷마을 인문학』에 이어 두 번째 대여한 책이었다. 시인 이생진은 추천사 「그의 섬살이 기록은 조곤조곤 들려주는 시다」에서 저자를 ‘섬박사’라고 불렀다. 그렇다. 어촌사회학자는 30여년 동안 섬을 찾아 지속가능한 어촌과 어업, 섬살이에 주목해왔다. 국내의 사람 사는 섬은 제주도를 비롯해 모두 473개로,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제 ‘갯내음을 찾아 떠나는 바다 맛 기행’이 말해주듯 서해는 강화도 후포항의 밴댕이회에서 진도의 뜸북국까지 33꼭지. 남해는 고금도 매생이에서 부산 영도 고등어해장국까지 36꼭지. 동해는 기장 대변항 멸치젓에서 울릉도 손꽁치까지 16꼭지. 제주는 각재깃국에서 성게비빔밥까지 13꼭지 그리고 제주문화 6꼭지까지.

추천정보 20꼭지는 백령도 점박이물범, 연평도 꽃게, 고군산군도 바지락, 양태(장대) 미역국, 만돌지구 지주식 김양식, 물총(동죽) 칼국수, 상․하태도 소금밭, 영산도 미역, 무안 갯벌낙지 맨손어법, 여자만․득량만 뻘배, 서남해안 주꾸미, 소경도 영등시, 손죽도 화전놀이, 오비도 종패뿌리기, 사량도 능량마을 별신굿, 좌도 매화, 낙동강 하구 명지갯벌, 밀양 한천, 가자미 식해, 울릉도 바다숲.

내가 3주에 한번 뭍에 나갔다가 섬에 들어오는 포구가 선수항이었다. 외지인들에게 후포항 선수마을은 ‘밴댕이마을’로 더 유명했다. 마음만 앞설 뿐 아직 백령도에 발길이 닿지 못했다. ‘백령도 냉면’은 시인 신동호의 시집 『장천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로 낯이 익었다. "장봉도다. 볼음도, 주문도와 함께 백합으로 섬살이를 하는 섬이다."(37쪽) 나의 삶터 주문도와 이웃섬 볼음도는 3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 갯벌 상합잡이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문도와 볼음도의 행정구역은 강화군이다. 어촌사회학자의 자료에 옹진군으로 입력되었음이 틀림없다. 세 권의 책에서 오류가 반복되고 있었다.

"겨울이 제철인 박대묵이다. 주민들은 묵의 탄력이 좋아 '벌벌이묵'이라 부른다."(56쪽) 강화도 일원에서는 ‘어묵’이라 불렀다. 섬살이를 하면서 맛보고 있는 묵이다. 탱글탱글한 탄력으로 젓가락으로 쉬 잡히지 않아 숟가락에 양념장을 찍어 바로 입에 넣을 수밖에 없다. 시인 안도현의 「병어회와 깻잎」을 떠올리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군산 째보선창의 선술집 주모가 일러주는 노하우다. 병어회는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 그래야 입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 "이 게장백반의 주인공은 '돌게, 독게, 뻘떡게'라고 부른다."(241쪽) 내가 사는 섬에서는 ’박하지‘라고 불렀다. 섬아낙네들은 소금장으로 게장을 담가 보기에도 깨끗했다.

몇 년 전 겨울 동해안 최북단 포구 거진항의 이름난 맛집 〈제비호식당〉을 찾았다. 순전히 ‘도치알탕’을 먹기 위해서였다. 묵은 김치와 시뻘건 말국이 칼칼하면서도 시원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시절, 친구가 주인인 동네 구멍가게는 나의 말방이었다. 겨울이 돌아오면 끈에 꿰인 양미리를 한 마리씩 풀어 연탄불에 구워 소주잔을 기울이는 맛이 그럴듯했다. 호주머니가 가벼웠던 그 시절, 부담없이 즐겼던 술안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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