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영원한 귓속말
지은이 : 최승호외 48인
펴낸곳 : 문학동네
3주 간격으로 뭍에 나갈 때마다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했다. 두 군데의 도서관에 들르면서 한두 권의 시집을 대여목록에 올렸다. 가장 젊은 도서관 《지혜의숲》 시집코너 앞에 섰다. 포스트잇에 긁적인 시집을 찾다가 눈에 띈 시집이었다. 아연했다. ‘문학동네시인선 050 기념 자선 시집’. 고작 50권을 맞은 기념시집이라니. 내 손에 들린 시집은 여덟 권이었다. 나의 책장에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메모에 긁적였던 대여시집을 뒤로 물리고, 『영원한 귓속말』을 빼들었다. ‘문학동네시인선’은 2011년 1월. 1호 최승호의 『아메바』, 2호 허수경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3호 송재학의 『내간체內簡體를 얻다』를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기념 시집은 3년 여간 ‘시인선’을 이룬 49인의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서 직접 고른 시와 산문 한 편씩을 덧대 엮은 자선自選 시집이었다.
49인의 시인에서 ‘문학동네시인선’으로 첫 시집을 낸 시인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박준을 비롯해 14명에 이르렀다. 거의 3분의 1에 가까웠다. 벌써 유명을 달리한 이가 두 명이었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허수경(1964-2018),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의 김충규(1965-2012). 시인 박정대는 이력에서 시인 강정, 리산과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를 결성했다고 말한바 있다. 단순한 나는 시인 리산을 남자로 생각했다. 시집의 사진을 보고 알았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의 리산은 여자였다.
낯선 시인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의 박태일의 「레닌의 외투」가 인상적이었다. 급히 온라인 서적을 검색했다. 묵직한 부피의 시선집 『용을 낚는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기존에 신청했던 군립도서관의 희망도서에서 한 권의 시집을 빼고, 시선집으로 대체했다. 표제는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의 박연준의 덧글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144쪽)에서 따왔다.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야 말겠다.- 마지막은 장석남의 「하문下問․1」(84쪽) 전문이다.
눈 오는 날엔 / 말을 트자 / 눈 속 / 드문 드문 / 봄동 배추 / 그렇게 / 말을 트자 // 눈이 녹으면 다시 / 서로는 / 말을 높이자 // 그리하면 나는 / 살이 없으리 // 그리하면 너도 / 살이 없으리 // 기름진 것 먹지 말고 / 말을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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