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대빈창 2024. 10. 24. 07:00

 

책이름 : 빈센트 나의 빈센트

지은이 : 정여울

펴낸곳 : 21세기북스

 

한국인들에게, 아니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일 것이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이 팔린 지독한 가난과 불운. 생활비와 화구를 살 돈을 동생 테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 예술인공동체를 꿈꾸다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른 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의문의 권총 자살로 이른 나이 서른일곱에 생을 마감한 인물.

반 고흐는 미술책를 펼칠 때마다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동안 반 고흐에 대한 책으로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학고재, 2000), 『반 고흐, 영혼의 편지』(위즈덤하우스, 1999),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위즈덤하우스, 2008)를 잡았다. 에세이스트 정여울의 『빈센트 나의 반 고흐』는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에 이어 두 번째 책이었다. 저자가 지난 10년간 빈센트가 머물렀던 네덜란드 준데르트, 벨기에 몽스, 프랑스의 아를․생레미․오베르쉬르우아즈, 그림이 소장된 암스테르담, 누에덴, 오델로, 런던, 뉴욕, 보스턴 곳곳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흔적이었다.

책은 프롤로그 「그 간절함이 찬란한 빛이 될 때까지」, 5부에 나뉘어 39편의 글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었다. 1부 빈센트가 말을 걸어온 순간. 10여년 전 도쿄여행 현지에서 얻은 책자를 통해 손보재팬보험 건물에 빈센트의 〈해바라기〉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른 아침부터 전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보며 빈센트를 정말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빈센트는 해바라기라는 정물을 묘사하기보다 해바라기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열정과 갈망을 표현. 빈센트 그림 속의 사이프러스는 수평의 대지 위에 수직으로 곧추 선 존재의 강인한 생명력. 〈감자 먹는 사람들〉의 국경과 언어, 시간과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감동은 바로 소박한 저녁 식사가 하루의 유일한 위안이자 휴식인 사람들의 고된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

2부 관계의 상처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 오베르쉬르우아르는 빈센트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작은 다락방, 치료를 받으며 수많은 교감을 나누었던 가셰의 정원, 〈오베르쉬르우아르의 성당〉,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마을. 밑바닥 삶,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의 진실을 그림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빈센트를 지탱한 내면의 힘. 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빈센트는 평화나 고요보다 격정과 분노를 표현. 빈센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가난하고 선량한 우체부 룰랭의 배려로 빈센트는 그 가족을 모델로 그렸다.

3부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길. 가눌 수없는 열정과 광기로 세상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형을 지치지 않고 가족과 세상으로 이끌었던 사려 깊은 동생 테오. 빈센트는 문학작품 독서를 통해 세상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지식,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키웠다. 빈센트는 구두를 그릴 때는 마치 구두 주인이 살아온 세월을 신발 한 켤레에 압축한 것처럼 생명과 인격을 부여. 자연의 색채가 아니라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을 색채로 표현한 〈탕기 영감의 초상〉. 빈센트가 그린 아몬드나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테오의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린 〈꽃피는 아몬드나무〉.

4부 내게 보이는 색깔로 세상을 그리는 일. 빈센트의 밀밭은 지평선을 화면 상단에 두어 밀밭의 풍요로운 색감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색채의 놀이터. 고갱은 빈센트의 넘치는 열정과 개성을 받아줄 만한 포용력이 부족했고, 빈센트는 테오가 아닌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제대로 맺어본 적이 없었다. 빈센트가 그린 〈노란 집의 침실〉은 모두 다섯 점으로 세 작품은 유화, 두 작품은 편지 속의 소묘. 가정과 작업실이 하나가 되고, 가족과 우정이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빈센트가 평생 꿈꾸었던 행복의 결정체 〈도비니의 정원〉. 빈센트는 사물의 형태를 명확한 윤곽선 안에 가두지 않고, 마치 사물의 내부와 외부가 자유롭게 섞이는 듯 한 이미지로 소용돌이 문양을 활용.

5부 온 세상이 나를 막아서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빈센트의 열정적인 성격과 혼자서 몽상에 잠기고 고독을 즐기는 가셰 사이에는 갈등의 불씨가 이미 존재. 생레미 시절 빈센트는 많은 작품을 모작. 일본 목판화로부터 받은 영향은 조화롭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단순한 색채의 과감한 활용.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노동의 소중함에 대한 예찬과 함께 노동의 쓰라림이 함께 투영. 빈센트는 사진처럼 똑같이 인물화를 그리려 한게 아니라 고뇌로 가득한 인간의 영혼을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지은이는 말했다. “빈센트의 그림이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심리학적 몸부림이자, 자신의 삶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가장 아름답고 치열하게 가꾸는 강렬한 의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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