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에서 일을 보고 배시간이 얼마나 남았던 간에 나는 화도 선수항으로 차를 몰았다. 포구를 지나쳐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 나무그늘에 차를 세웠다. 좌석을 뒤로 젖히고, 책을 펼치다 무료해지면 눈을 감았다. 바다로 향하는 언덕끝머리에 장곶長串 돈대墩臺가 있었다. 걸어서 1-2분 거리였지만 나는 그동안 등한시했었다. 돈대에 바짝 붙은 군부대를 오가는 차량이 가끔 흙먼지를 날릴 뿐이었다. 혼자 고적한 기운에 잠기는 것이 좋았다.
장곶돈대는 거의 원형에 가까웠다. 까막눈이 보아도 돈대는 천연의 요새였다. 바다를 향해 길쭉이 내민 언덕 끝에 돈대가 자리잡았다. 바다를 향해 뻗은 오른쪽 산줄기는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의 어류정 포구였다. 왼쪽 바다 아스라이 내가 살고 있는 주문도가 보였다. 외떨어진 작은섬은 무인도 수시도다. 어머니는 현관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의 몸놀림이 무거웠다. 당신은 애써 감추었지만 얼굴 상처로 보아 넘어지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임의로 복용약을 늘렸고, 급히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담당의사는 나를 옹호해 주었다. 약기운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섬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배 시간까지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돈대로 발길을 향했다. 어머니를 지켜보는 나의 눈길은 항상 아슬아슬했다. 넘어지시지 말아야 할 텐데.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형성시키지 못하는 노인성 뇌질환이었다. 근육이 경직되면서 천천히 몸이 굳어갔다. 상체는 움츠러들고 보행이 점차 힘들어졌다.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펴 드렸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오늘도 말을 듣지 않는 몸을 탓하면 텃밭의 산비둘기를 쫓느라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지를 것이다. 녀석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서너 발자국 앞에서 뻔뻔스럽게 뒤뚱거리며 여유를 부렸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강낭콩과 양파 두둑에 사이짓기로 서리태를 서너 알 씩 넣었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콩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놈들이 파종한 콩알을 모두 빼먹은 것이다.
늦콩 서리태의 파종적기가 한 달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빈 두둑을 보며 안타까워하셨다. 섬에 삶터를 꾸리고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산비둘기들이 밉살스러웠다. 내년부터 콩도 싹을 내서 이식해야겠다. 감나무집 형수한테 물었다.
“늦었지만 어쩌겠어요. 내일로 미루지말고, 오늘 콩파종 하세요.”
장마철로 대기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구멍 뚫린 검정 비닐이 멀칭된 두 두둑에 서리태를 파종했다. 산비둘기의 해꼬지를 막기 위해 부직포를 씌웠다. 아직 키가 작은 잡풀은 무시했다. 부직포를 벗기면 풀이 수북하게 자라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또다시 땀을 흘릴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몸을 못 놀려 막내 혼자 애쓰는 텃밭 농사를 안타까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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