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풍경을 담은 그릇 정원

대빈창 2024. 11. 13. 07:30

 

책이름 : 풍경을 담은 그릇 정원

지은이 : 박정욱

펴낸곳 : 서해문집

 

내가 잡은 책은 2001. 3. 1. 초판1쇄였다. 손에 넣은 지 23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책을 다시 손에 펼쳤다. 그 시절 지은이 박정욱(朴正旭, 1961- )은 조경무크지 『LOCUS』의 편집위원이었다. 책판형은 177*224로 큰 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접힌 겉표지의 그림은 신록이 우거진 창덕궁 후원의 〈관람정〉이었다.

조선은 독특한 별서別墅 정원 양식이 풍미한 시대였다. 시ㆍ별곡別曲 등 문학 창작의 산실이었다. 시문을 위해 경관을 조성하고, 시문을 통해 감상하며, 시문을 통해 그 기법이 전수되는 독창적인 조경 양식의 시경詩景은 규범이 되는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관축觀築이라는 철학적 관념을 통해 정원 구조를 건축했다. 첫머리는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갖춘 〈창덕궁 후원〉이었다. 조선의 조원造園은 자연과의 만남에 시적 운치를 더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순수한 얼을 담은 예술이었다.

1부 정원 시문집 해석과 시경詩景. 담양 소쇄원瀟灑園―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 1755년경 제작된 목판본 〈소쇄원도〉는 『소쇄원사십팔영』의 각 영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 정원의 구성 원리를 한 눈에 보여주어 정원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필수적. 대숲을 지나 소쇄원에 들어서면 아늑한 경치를 병풍처럼 두른 긴 담을 만나는데 『소쇄원사십팔영』은 여기에 붙인 장문의 시.

보길도 부용동芙蓉洞―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1748년 고산의 5대손 윤위가 쓴 『보길도지甫吉島識』를 보면 『어부사시사』는 노래와 회화를 섞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노래를 통해 세연지洗然池를 회화적으로 묘사. 앞의 개울과 강, 뒤의 첩첩옥산과 절벽, 꽃과 강촌 풍경, 소나무들의 한거閑居를 계절별로 노래.

영양 서석지瑞石池―경정잡영敬亭雜詠. 『경정잡영』의 핵심은 돌들에 붙인 이름과 시적 상상의 전개. 서석지는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구분되어, 외원은 문암文巖에서 일월산까지 계곡을 따라 전개되는 경승지. 『임천잡제 臨川雜題』는 서석지를 둘러싼 외원의 묘사를 각각 한 폭의 그림으로 묘사.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다산화사茶山花史. 정석丁石을 비롯한 문자석文字石은 시를 짓는 것에 그치지않고 문자를 자연물에 각인해 조원의 한 요소로 활용. 초당의 사경四景을 기록한 『다산초당사경첩茶山草堂四景帖』은 조선시대 다른 별서원의 문집과는 달리 작정作庭의 의도와 기법을 설명. 『다산팔경사茶山八景詞』는 초당, 연못, 화계 등을 차례대로 노래하며 각각의 장소를 시를 통해 한 폭의 그림으로 변화.

경남 함안 국담원菊潭園은 〈무기연당도舞沂蓮堂島〉가 전해 내려와 조원造園의 의도를 추정. 전남 화순 임대정臨對亭은 경치 안에 글을 적어 넣어 뜻을 부여하고 경치에 시적 세련을 가하여 조원造園. 충남 대전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적당히 섞어 만드는 한국 정원의 특징. 경북 월성 독락당獨樂堂은 조선 정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빛과 바람의 활용.

2부 조선 시대의 관축觀築 양식. 조원은 깨달음의 경지인 관觀을 표현하는 차원으로 단순한 식재植栽와 치석置石이 아닌, 관觀의 구조를 표현하는 건축예술. 동양의 정원은 자연과 인간, 우주에 대한 깨달음 같은 하나의 관觀을 정원에 담아 건축. 조선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들과 화계나 단에 의해 노출되는 자연적인 흙바닥의 정원. 그릇으로서의 정원을 보여주는 네모진 연못, 곧 방지方池는 석연지石蓮池 같은 수조 형태. 강화도 마니산 정상 참성단의 구조는 곧 한국 정원의 시원적始原的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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