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대빈창 2024. 11. 22. 07:30

 

책이름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지은이 : 정지아

펴낸곳 : 마이디어북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는 작가 정지아(鄭智我, 1965- )의 에세이였다. 애주가로 소문난 소설가는 『빨치산의 딸』을 내놓은 지 30년을 훌쩍 넘겨 첫 산문집을 냈다. 술과 사람에 관한 재미있고 코끝이 찡한 34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술꾼은 말했다. “모든 존재가 서글펐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슬픔을 애도하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을 찔끔 떨궜다. 위스키든 소주든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1부, 스물여섯 살 나이로 잠수를 탈 때 영하 20도가 넘는 지리산 뱀사골 산장에서 최초의 위스키 패스포드를 몰래 마시는데, 잠든 줄 알았던 여섯 명의 등산객에게 들켰다. 그들은 작가를 알아 본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투사들. 첫 술은 고3 겨울방학 크리스마스이브, 밤을 새기 위해 놀러 온 친구들에게 사회주의자 아버지가 내놓은 아껴두었던 매실주 단지. 술이 취해 실수한 인연으로 만난 경제학교수 책을 교정ㆍ교열한 몫으로 신촌 바에서 마신 시바스리갈 12년산 더블 샷. 반나절 걸려 찾아간 포천 군부대의 동기 면회에서 여인숙 버너로 끊여 먹은 안성시장 냄비 아구탕. 친구의 오래된 한옥 뜰의 나무 위 오두막에서 밤새워 마신, 솜씨 좋은 친구 어머니가 담근 큰 주전자의 황매실주. 원어민 강사 데이브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지리산종주 백무동 산장에서 마신 시바스리갈 18년산. 아프리카 초원의 거대 사과나무 열매가 자연 발효된 술에 취해 꺅꺅! 고음을 내지르며 사자의 대가리를 밟고 나무 위로 튀어오르는 원숭이. 집에서 술을 마실 때마다 떠올려지는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팻말에 얽힌 고졸 PD의 귀여운 복수. 쏟아지는 빗줄기속 지리산 종주를 마친 남원역의 허름한 선술집, 막걸리 값만 받는 할머니의 무한리필 밑반찬 안주로 일행 여섯 명 모두 술에 취한 오병이어의 기적.

2부, 제자 전성태와 함께 북한산 등산로 끝집 연립주택에 세든 작가를 찾아와 3박4일 술마시는 방법을 가리켜준 시인 김사인. 대여섯살 적 알코올중독자 큰 아버지가 골방에서 계란에 소주를 부어 화로에 익힌 계란밥. 고려인들의 참담한 역사에 짓눌려 보드카에 만취한 블라디보스크 여행. 공항 면세점에서 일인당 두 병씩 블루를 구입한 행복했던 PD들과의 블라디보스크 여행. 전설의 식당 신라호텔 중식당 압권은 로얄 살루트 38년산. 공장 노동자 10만 여명의 생산공장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회장님의 친구 당 고위간부가 꺼내든 맥켈란 1926의 한 병 값은 3,000만원. 한겨울 경포대 갔을 때, 후배가 만들어 준 골뱅이 무침은 술을 부르는 안주. 70년대 운동권 국어선생의 빨치산의 딸에 대한 호의를 거절한 독 오른 중학 2년 때 일을 회상하며, 어려움을 이겨낸 제자와 소주 건배. 사람관계 맺는 방식이 정반대인 술이 약한 후배와의 술자리.

3부, 도박사 재일교포 2세의 드라마 대본 취재를 떠난 오사카에서 야쿠자 아저씨와 마신 일본 위스키 히비끼 30년산. 마지막 날 스낵(우리식 개방된 룸살롱)에서 마신 아와모리는 40도가 넘는 일본 소주. 스무살 차이가 나는 제자와 밤새 술을 마시고 식당의 해장술, 낮술에 취한 귀가길 흩날리는 벚꽃아래서 춤추던 제자. 다정한 제자와 시바스리갈을 마시며 회상하는 대학입학 초창기 시 합평시간, 한 동기의 시를 읽고 작가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한옥펜션 주인 일행과 떠난 키르기스스탄 초원의 모닥불 사위어가는 밤의 보드카. 아일랜드 한국학 콘퍼러스에 참석해 맛본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ㆍ부시밀즈ㆍ레드브레스트. 학교 앞에서 소주로 만취해 쳐들어간 하얏트호텔 제이제이 클럽. 2005년 여름 남북작가대회 일원으로 북한 방문, 호텔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필름이 끊어져 계곡 바위에서 잠든 묘향산의 밤. 오래전에 만난 제자의 할머니는 ‘斗酒不辭두주불사’ 손녀의 술을 왜 이렇게 마시냐는 물음에, 할머니의 답은 “술이 소화제야”

4부, 가난한 빨치산의 딸 앞날을 도와준 교수께 뱀술을 선물한 사회주의자 아버지. 전혀 문창과스럽지 않은 해맑은 제자와 일행은 계곡물을 끌어들인 수영장에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작가는 그런 제자들을 지켜보며 마시는 블루.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다 되어 진심을 알게 된 주말이웃. 모든 식구가 손이 큰, 술 마시는 스타일이 똑같은 고창농부 주영태. 8박9일 몽골의 독수리사냥 취재여행의 퍼붓는 눈 속에서 마시는 칭키즈칸 보드카. 한국에 온 몽골 여행 가이드 선배를 구례에 초대, 30년 만의 마음을 터놓은 술자리. 미국 명문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제자는 방학 때마다 공항 면세점에서 스승이 좋아하는 블루를 구입ㆍ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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