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언니에게
지은이 : 이영주
펴낸곳 : 민음사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깊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땅으로 내려갈 수가 없네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는 중입니다 지붕이 없는 골조물 위에서 비가 오면 구름처럼 부어올랐습니다 살 냄새, 땀 냄새, 피 냄새 // 가족들은 밑에서 희미하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덩어리를 핥고 싶어서 우리는 침을 흘립니다 // 이 악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공중을 떠도는 망령을 향하여 조금씩 옮겨갑니다 냄새들이 뼈처럼 단단해집니다 // 상실감에 집중하면서 실패를 가장 실감나게 느끼면서 비가 올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이란 지붕도 벽도 있어야 할 텐데요 오로지 서로의 안쪽만 들여다보며 처음 느끼는 감촉에 살이 떨립니다 어쩌면
「공중에서 사는 사람」, 이 詩였다. 10연으로 구성된 시에서 전반부 1ㆍ2ㆍ3ㆍ4ㆍ5연을 인용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만났다. ‘어떤 고행의 실감에 도달’해보려는 시집 『차가운 사탕들』(문학과지성사, 2014)은 군립도서관에 없었다.
대신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문학과지성사, 2019)에 이어 두 번째 대여한 시집 『언니에게』(2010)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 이영주(1974- )는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108번째 사내』(문학동네, 2005)이후, 5년 만에 펴낸 시집이었다. 3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다. 해설은 시인 김행숙의 「언니의 물고기와 계단의 시간」이었다.
‘상상력은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특한 시적 공간’을 아둔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해설부터 잡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시편마다 어둡고 축축한 온갖 이미지들이 널려있었다. 추천사는 시인 김경주, 김소연 몫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푸르게 방황하고 유려하게 왕복하는 시인. 저무는 사람 곁에서 함께 저물며 빛나는 시인.’(김소연). 自序의 1ㆍ2연이다. 내 악행의 기록을 남기면서 // 나는 많은 것이 되었다가, / 많은 것으로 흩어졌다. 마지막은 두 번째 시 「전기해파리」(14-15쪽)의 1ㆍ5ㆍ6연이다.
내 몸에서 가장 긴 부위는 팔 / 가장 아름답게 악행을 퍼뜨리는 것 // ······ // 몸 안에 독을 숨긴 채 / 바다의 심층에서 먼 나라의 심층까지 배달하는 마린보이 / 그는 마지막 항구로 돌아와 수족관에 잠긴다 / 나는 두 팔을 길게 뻗어 잠들지 못하는 그를 감싸 안는다 // 이 찰나의 떨림으로 숨겨진 악행을 나눠 갖자 / 해파리들이 몸을 대고 서로 찌르고 있다 / 조금씩 일렁이는 가장 어두운 심층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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