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빈산엔 노랑꽃
지은이 : 장돈식
펴낸곳 : 학고재
수필가 장돈식(張敦植, 1920-2009) 선생은 1990년 예순 다섯의 나이, 『한국수필』에 「취하는 것이 술뿐이랴」로 등단했다. 선생은 1950년 〈가난안 농원〉을 설립했다. 1988년 원주 백운산 자락에 〈백운산방〉을 짓고 자연과 벗하며 지내왔다. 『빈산엔 노랑꽃』은 제8회 한국수필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창작수필』에 1992년 봄호부터 5년간 연재했던 글들을 묶었다. 6부에 나뉘어 67편의 글을 담았다.
1부 나의 친구들. 산방사우山房四友는 왕토끼, 딱새, 다람쥐, 억세. 토끼 암컷은 굴 파기를 도운 이웃 토끼와 수컷의 털을 뜯어 산실 바닥 재료로 깔고, 서너 마리 새끼를 낳으면 자기 가슴의 털을 뽑아 이불처럼 덮어준다. 새매한테 암컷을 잃고 새끼 다섯 마리를 혼자 먹여 키운 수놈 딱새. 아무렇게나 쌓은 기초 돌 틈에 거처를 마련 3년째 이웃 다람쥐. 억세는 혈통증명서가 딸린 일곱 살 수컷 진돗개. 정을 나눈 지 6년 된 수령 100-200년의 절벽 위 노송 운이雲伊. 마당가 미니버스만한 바위 덕德바위. 덕바위에 기댄 수령 서른 살의 대추나무 ‘보은댁’. 대추나무에서 10미터 거리의 스무살 안팎의 현사시나무는 ‘현군玄君’. 산촌 사람들은 집을 며칠 비워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개나 닭이 굶으면 누구라도 먹이를 갖다 준다. 백운산 끝자락 골짜기를 흐르는 계류가 마지막으로 소용돌이치는 여울목 해발 600미터의 이곳 ‘운향동천云香洞天’. 통나무 귀틀로 직접 지은 오두막 서재 ‘백운산방白雲山房’.
2부 생명, 그 장엄함.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 지 눈치를 채고 텔레비전 안테나와 사시나무 15미터 사이, 높이 5미터의 허공에 정교한 거미줄을 짜는 왕거미. 30년생 오동나무 둥지에 새끼 네 마리를 기르는 크낙새. 태풍으로 오동나무 허리가 부러지고 우묵한 둥지에 빗물이 고여 새끼들이 허우적거려, 비가림을 해주고 물을 퍼내주자 태풍이 지나간 며칠 후 크낙새는 새끼들을 데리고 솔가. 방그러니 계곡 산까치와 까치의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어도 승패를 가리지 못하는 영역싸움. 검은등뻐꾸기의 탁란은 번식률이 지나친 새들의 수효를 조절하는 정교한 자연 운영. 정분이 난 수고양이 애나와 암캐 억순이. 지구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에 심겨진 밀과 벼, 콩의 우리에게 주는 시사. 가재의 두 집게발 크기가 다른 것은 잘려나간 앞다리를 재생하는 중.
3부 빈산엔 노랑꽃. 해가 서산에 걸리고 불그레 노을이 지면 다음날은 쾌청하다는 징조. 치악산과 백운산 언저리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꽃. 이른 봄과 늦가을 눈으로 얼룩진 산에는 노랑꽃, 봄가을은 붉은 꽃, 청산에 피는 흰꽃. 식물들은 영양분을 빨아올리기 위해 유기물이 많은 지표면에 잔뿌리를 내리는데 이를 보호하려고 잎에서 지면으로 방사放射하는 방향성 물질 피톤치드. 반딧불이는 여름 번식기가 되면 배마디腹節 속에 가득 채운 인燐에 산소를 공급하여, 투명한 각질 창을 통해 1분당70-80번씩 밝은 푸른색 형광螢光으로 짝을 유인.
4부 털벙거지의 행복. 으악새는 우리 산야 어디에나 자생하는 억세의 경기도 방언. 설악산의 반달곰이 다 죽자 곰의 먹이인 산죽山竹이 무성해져 소나무가 씨앗을 떨구어도 싹을 틔우지 못했다. 날이 가물면 송충이가 급속히 번져 청청한 솔잎을 갉아먹어 소나무의 생장을 억제하고 수분의 발산을 조절.
5부 산 속의 사람, 산 밖의 사람. 체구가 깡마르고 양 어깨에 멜 수 있는 끈이 달린 독특한 구럭을 지고 걸음걸이가 산짐승처럼 가벼운 사람들은 지난날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 온 산을 뒤져 첩약지을 건재용 나무껍질을 벗기는 ‘인간 송충이’. 2만원을 아끼려고 무거운 쌀 한가마를 두 자루에 나누어 원주에서 서울까지 300리 길을 지게로 나른 화전민. ‘야키바타(자연을 다시 보는 농민의 모임)’는 화전이라는 전통농법에 재도전하여 일본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아카카부(빨간 알타리무)를 생산. 일본 노인홈은 현대판 고려장. 약삭빠른 이 시대에 퇴출될 수밖에 없었던 석유 몇 말이면 겨울을 나던 ‘안나 보일러’.
6부 느티나무 부부. 포르투갈 인들에게 묻어온 식물이 일본 개항지 고베에서 길을 따라 교토까지 북상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0년. 황해도 장연의 평지돌출한 608미터의 불타산佛陀山 앞품에 자리 잡은 장주애長主愛 마을이 고향. 대가의 며느리가 시어른 장사葬事 때, 조문객 500명과 모여든 수백 명의 저기를 열흘이나 치러야하는 유교의식에 넌더리를 내고 예수를 믿으면 사후에 자손들이 이런 제사로 고생하지 않을 거라는 단순하고 절박한 이유로 기독교에 귀의한 할머니.
자유기고가 김서령은 발문 「내가 아는 장돈식」에서 “개신교 장로로 은퇴를 맞았지만 종교에서 자유롭고, 공산 정권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지만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고, 30년 넘은 나이차가 있지만 연애 이야기까지가 편안”(289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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