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대빈창 2024. 12. 18. 07:30

 

책이름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지은이 : 강신주ㆍ지승호

펴낸곳 : EBS BOOKS

 

당대의 문제에 천착하여 시대를 읽는 인터뷰어 지승호(1966- ). 당대의 징후로부터 철학을 생산해 온 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 ). 10년 만의 두 번째 인터뷰는 낮 2시쯤 만나 밤 10시경까지 여덟 번의 만남으로 3000매의 녹취록을 얻었다. 〈EBS 인생문답〉 첫 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프롤로그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가난해졌으면’(지승호), 열한 번의 만남 그리고 에필로그 ‘두 번의 인터뷰 그리고 두 가지 바람’(강신주)로 구성되었다.

첫 만남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인간은 ‘이기적 개인’. 이성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하고 불리한 것은 회피하는 능력. 합리성은 이익과 불리 혹은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이익이나 쾌락을 선택. 두 번째 만남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것. 삶이 위기에 빠지거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철학을 찾으면서 성찰. 차별은 위계 질서가 굳어지고 우선순위가 매겨진 기존 사회에서 물려받은 것.

세 번째 만남 팬데믹 그리고 언택트. 노동계급에게 임금을 주고, 노동계급은 그 임금으로 자기나 동료 노동자가 만든 상품을 사는, 일을 하고 소비하는 매커니즘으로 자본주의가 발전. 이기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교환, 이타적 개인 혹은 사랑에 빠진 개인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교환하는 것이 사랑의 교환ㆍ공동체적 교환.

네 번째 만남 스마트폰 사회경제학.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기 힘든,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는. 스마트폰이 외장형 심장이 되어버린 MZ세대도 자본주의 체제에 상당히 보수적. 자본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방법은 일정 정도의 실업률, 고용불안 상태를 유지하여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계급을 통제.

다섯 번째 만남 ‘작은 자본가’들의 세상. 지금 우리 사회의 진보는 대부분 진보를 팔아서 권력과 자본을 추구한 ‘진보팔이’. 진보를 표방했던 20세기 제도권 사회주의 국가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은 진보적인 사회와는 거리가 먼 국가기구와 관료들이 생산수단을 독점. 국가가 아닌 사회의 형식, 물적 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사람이 가지는 사회가 자유로운 공동체의 핵심. 과거 노예제 사회와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타율적 노예인가 자발적 노예인가의 차이.

여섯 번째 만남 가족공동체와 ‘기브 앤 테이크’의 세계.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동체 의식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 자본주의가 파괴하지 않고 남겨둔 마지막 공동체, 가족이 미래의 노동자를 기르는 것이 자본주의 입장에서 더 효율적. 자본주의 체제가 강화되면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벤담적 인간(이기적 개인)의 확대. 자비는 타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나의 고통도 최소화하려는 마음.

일곱 번째 만남 진보의 전제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다. 1980년대 독재와 싸웠던 대학생들은 신자유주의적 기본 질서에 성공적으로 안착. 2010년대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며 ‘재테크’라는 미명하에 부동산ㆍ주식 투자.  ‘노동’, ‘민주주의’, ‘평등’ 같은 슬로건을 여전히 휘두르는 ‘강남좌파’. 노동자들은 어떤 자본가에게 자기 노동력을 팔 것인지 결정할 자유밖에 없는,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회.

여덟 번째 구경꾼에서 주체로. 이명박 정권(2009년) 때 해운법 시행규칙의 선령船齡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청해진 해운이 폐선에 가까운 18년 된 배를 일본에서 수입 운항,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 법률이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문제. 일본제국주의 억압체제에 맞선 투쟁에서 ‘합법적인 평화 집회’는 무용하다는 통찰로 의열단에서 무기를 만들고 위조화폐를 제조한 단재 신채호.

아홉 번째 만남 글, 책, 담론들. 과거 철학적 사유들을 일괄적으로 정리 철학적으로 평가한 『철학VS철학』(2016, 개정완전판). 니체, 마르크스, 장자, 나가르주나 등의 책들은 특정 시대의 소수 의견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유인들의 다수 의견이 될 것. 인문주의적 정치의 비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다룬 『역사철학ㆍ정치철학』 시리즈. 강자에게 복종하지 말고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자유인의 자긍심이고 당당한 사람의 자긍심.

열 번째 만남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씨네샹떼』는 영화평론가 이상용과 뤼미에르형제가 만든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1896)에서부터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 스물다섯 편에 대한 2인 토크의 결실. 어떤 사건하고 멀어지거나 젊은 날을 정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는 4ㆍ19혁명후 장면 정권이 자유를 억압했던 이승만 독재정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 소수가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되었던 다르위시, 소수가 되어버린 수많은 해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던 김선우 시인.

열한 번째 만남 넓은 잎을 가진 철학 나무처럼. 자본주의 시대가 분업의 체제, 전문화의 체제라고 한다면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분업에 저항하는 사람, 전문적 지식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타자와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소수 지배자가 되거나 그들 편에 서지 않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의 고향은 남프랑스 세뜨Séte다. 바닷가 경사지의 ‘마랭 묘지’에 시인은 잠들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매혹Charmes』에 실린 「해변의 묘지」에서 표제를 따왔다. 마지막은 그 일부분(367쪽)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세찬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닫고, / 파도의 포말들이 바위 틈에서 작열한다! /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모든 페이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