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해방일기 1

대빈창 2025. 1. 7. 07:30

 

책이름 : 해방일기 1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너머북스

 

중화 제국과 오랑캐의 대립과 교섭의 역사로 중국의 문명사를 바라본 『오랑캐의 역사』,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역사 에세이 『밖에서 본 한국史』, 뉴라이트의 본질과 현상을 전방위로 비판한 『뉴라이트 비판』. 내가 읽은 역사학자 김기협(1950- )의 책들이다. 민간독재 이명박(2008-2013)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조폭처럼 활개를 쳤던 그들이 돌아왔다. ‘신보수’를 표방하며 식민지배와 독재를 정당화하는 ‘뉴라이트’였다.

한국현대사의 결정적 기로는 80여 년 전 ‘해방정국’이었다. 그동안 나의 현대사 공부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 6권), 『대한민국 史』(한겨레출판, 4권)로 이어졌다. 돌아온 ‘뉴라이트’의 꼴사나운 행태에 질린 나는 책 속에서 위안을 찾기로 했다. 다행스럽게 2011-15년에 출간된 『해방일기』 10권이 내가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외진 곳의 도서관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겪은 역사학도의 일기 『역사 앞에서』의 김성칠은 역사학자의 부친이었다. 그는 환갑을 맞아 해방일기 를 시작하면서 선친의 유업을 잇겠다고 말했다. 『해방일기 1』이 출간될 즈음, 그는 『역사 앞에서』의 원본을 이화여대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1권의 부제는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로, 시간대는 1945. 8. 1 ~ 10. 29. 이었다. 역사학자는 80여 년 전의 긴박한 상황을 생중계했다.

각 권은 400-500여 쪽 부피로 만만치가 않았다. 차례는 6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저자는 「원칙과 상식을 낯설어하는 사회」에서 말했다. “해방조선에서는 지금보다 원칙과 상식이 더 많이 존중되었다. 그 무렵 소수집단의 이해관계가 원칙과 상식을 짓밟기 시작한 이래 원칙과 상식을 회복할 충분할 기회를 우리 사회는 갖지 못했다.”

1장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1945. 8. 1 ~ 15). 영국 수상 애틀리, 미국 트루먼 대통령, 소련 서기장 스탈린의 포츠담 선언(1945. 7. 17-8.2)은 대對 일본에 대한 최후통첩으로 원자폭탄 사용방침 합의. 3백만 유태인의 희생, 2백만 가까운 폴란드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폴란드마저 온전한 독립을 얻지 못한 것이 2차대전 종전 당시의 상황. 미국 국무ㆍ전쟁ㆍ해군 3부조정위원회SWNCC의 대령급 실무자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이 38선의 초안 작성. 미국의 중견실무자들이 한밤중에 만들어낸 분할점령안이 아무런 토론없이 두 나라 사이에서 결정. 민족모순에 매달린 우파가 투항과 협조의 길로 돌아선 반면 계급모순을 지향하는 좌파는 전향을 거부하는 추세. 서정주(徐廷株, 1915-2000)를 비롯한 1937년 이후 일제의 전쟁노력에 협력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승리의 환상을 제국주의자들과 공유.

2장 항복을 선언했으나 아직 항복하지 않은 자들(1945. 8. 16 ~ 31).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1928년 12월 이후 중국공산당에 흡수, 만주 공산주의 운동은 아직 활발하지 않아서 공산당원 90% 이상이 조선인. 8월 하순 진주부터 소련군은 행정을 현지인에게 맡겼고, 총독부산하 조직에 행정과 경찰을 맡긴 9월 중순 진주한 미군. 미군정의 성격이 어떤 것이 될 지 정확한 정보를 얻은 자본가 집단은 건준과의 타협의 길을 거부하고 한민당 결성.

3장 남과 북 점령군의 서로 다른 모습(1945. 9. 1 ~ 15). 연합군의 시선으로 임시정부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장개석 밑에서 놀던 조무래기들. 우익에 속하면서 좌익을 배제하지 않는 중도우파의 길을 택한 안재홍과 좌익과 함께하면서 민족주의를 버리지 않겠다는 중도좌파의 길을 택한 여운형. 민족의 비극을 불러온 것은 우익이 제 몫을 제대로 못한 탓으로, 실패의 반성이 없는 지금도 우익의 실패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 좌파 일각의 헤게모니 추구가 중도파를 우익으로 내몰거나 무력화시켜 비극적 역사전개의 ‘적대적 공생관계’. 이북에서 소련군은 조선인들에게 행정권과 경찰권을 넘겨주고 있었으나, 이남의 미군은 주민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고 일본인들에게서 통치자의 역할만 인수.

4장 댄스홀과 요정이 그토록 번창한 이유는?(1945. 9. 16 ~ 30). 한민당 주류 세력이 폭력에 의지해 극우의 길로 흘러간 것은 군정이 방치, 방조하여 한국의 정치수준을 타락시키고 중도파의 길을 봉쇄한 기반조건. 한국 분할 점령은 미국이 제안, 김일성 그룹은 해방 후 한 달 이상 지난 뒤에야 입국. 총독부의 ‘융자명령’으로 조선은행의 화폐 추가 발행은 퇴각자금과 대출금.

5장 남북 공산주의 운동의 갈림길(1945. 10. 1 ~ 14). ‘준비된 근대성’의 한글로, 한국인은 근대화의 충격 속에서도 민족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은 중요한 조건.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은 일제 말기 식민통치의 폭력성과 혼란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박헌영의 8월 테제(1945년)는 코민테른의 12월 테제(1928년)의 연장선 위에서 작성, 이런 의미에서 박헌영은 ‘교조주의자’.

6장 이승만의 등장(1945. 10. 15 ~ 29). 이승만은 미국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이후 탄핵당한 후 독립운동가로서의 위신 추락. 1908년 3월 23일 장인환ㆍ전명운 열사의 매국노 ‘스티븐슨 저격 사건’의 교민사회 통역 부탁을 거부한 이승만. 이승만은 현시욕이 강한 출세주의자로 ‘외교독립노선’은 하나의 도구. 중일전쟁후 1939년 워싱턴으로 건너간 이승만은 한국인이 아닌 지한파知韓波 정치브로커. 북한점령군이 주민과 손잡고 일본인과 친일파의 저항을 분쇄한 반면 남한점령군은 일본이 키워놓은 경찰력을 앞세워 주민들의 자치조직을 억압하는데 몰두. 중도파 안에서 좌익과 우익은 대화를 통해 건설적 타협이 가능, 미군정의 극우파 양성과 이에 따른 극좌파 득세는 대화의 조건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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