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해방일기 2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너머북스
『해방일기』는 80여 년 전 해방정국을 상식적인 ‘보통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 본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했다. 구체적 모델은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이었다. 해방공간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대한 기로로 진영논리에 빠지지않고 그대로 본다는 취지였다. 역사학자는 말했다. “좌와 우를 포괄하는 중도적 정치노선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그룹으로 이들을 알리고 싶었다.”
2권의 부제는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로, 시간대는 1945. 11. 1 ~ 1946. 1. 31. 이었다. 2권은 535쪽으로 부피가 대단했다. 차례는 6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베트남과 한국의 식민지시대, 해방의 차이를 비교한 베트남 이야기 3편이 흥미로웠다. 핀란드의 독립을 지켜 낸 국부 카를 구스타프 마너하임(Carl Gustaf Mannerheim, 1867-1951)을 다룬 꼭지가 새로웠다. 저자는 「독립의 길을 험하게 만든 반탁운동」에서 말했다. “조선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절충을 외면하고 외세에 의지해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세력이 정치계를 휩쓸 수 있었던 것은 의지할만한 세력 극좌는 소련군, 극우는 미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1장 이승만, 주도권을 선점하다(2045. 11. 1 ~ 11).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의 강점은 맥아더, 하지와의 밀착관계였고, 약점은 투쟁현장을 회피해 온 행적 때문에 지도력과 신뢰성이 약하다는 것. 한민당을 간판으로 한 재산가 집단은 미군정에 대한 영향력으로 친일파 처단의 압력을 면하고, 일본인이 남긴 권력과 재산권을 차지. 임정의 귀국이 늦어진 것은 광복군 확장 시도로 장개석 군대가 동남아 지역의 일본군의 조선인 포로 20만명을 넘겨주기를 바란 것. 조병옥(趙炳玉, 1894-1960)은 당대의 대표적 친미파 경무국장으로 극단적 좌익탄압을 주도. 동양척식 소유 경지는 전체의 12.3%에 달했고, 경작 농가는 58만7974호로 전체 농가 217만2435호의 27.1%에 달했다.
2장 기다리고 기다린 임정의 귀국(1945. 11. 15 ~ 30). 중도 좌우익 인민당과 국민당은 말과 글뿐인데 극단파 한민당은 돈과 경찰력을, 공산당은 조직력을 장악.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주민을 억압의 대상으로 보는 난폭한 종속주의 노선. 1945. 11. 20. 군정청 정치고문 윌리엄 랭던이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은 ‘분단 건국’의 기본 방침을 공식적으로 제기. 김구는 친일파 문제를 너무 쉽게 풀어줌으로써 임정의 정치적 자산을 잃어버리고 좌우대립의 극단화를 유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맥아더 노선’은 점령군 미군의 위상을 강화하는 목적과 한반도의 분단을 지향하는 노선.
3장 좌우대립의 선봉장 이승만과 박헌영(1945. 12. 1 ~ 10).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 이외의 모든 것을 공산주의로 몰아붙이는 극우적 관점. 극좌파가 장악한 인공은 독선적 노선에 빠져 극우파 결집의 빌미를 만들어 ‘적대적 공생관계’의 도구로 전락. 해방된 민족의 정치적 염원의 실현 과제는 이북에서 훨씬 성공적, 1946년 3월 토지개혁. 이북 지역의 친일파와 지주층 이주 물결은 점령군의 정책 차이가 38선 남북의 인적 구성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
4장 파국을 향해 떠내려가는 조선(1945. 12. 14 ~ 31). 식민지시대 항일투쟁 중 가장 적극적인 방법을 취한 의열단의 테러전술. 압도적 자금력을 가진 한민당이 폭력을 정치판에 도입. 소련군 민정부가 설치되는 9월하순까지 38선 이북은 일본인의 역할이 계속되었고, 이남은 11월 중순까지 미군과 일본인의 공동지배 상황. 이승만은 도덕적 실천으로 지도력을 키우기보다 책략을 통한 영향력 확보에 몰두, 책략은 혼란과 분열의 수단을 취한 것. 1945. 12. 17. 〈동아일보〉의 신탁통치를 소련이 주장했다는 조작 기사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극악한 사건. 허위기사로 폭발된 극한적 반탁운동이 올바른 독립, 민족국가 수립의 길을 망친 가장 결정적 계기.
5장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대립의 격화(1946. 1. 3 ~ 13). 국제주의에 입각한 신탁통치안은 강자 독식을 막고 약자의 지분을 보장, 조선의 군정당국자들ㆍ미국 극우파는 타협적 신탁통치안을 반대하고 실력대결을 조장. 해방직후 조선은행은 석달 동안 35억원을 발권하여 민중 전체는 통화량 증가만으로 곱절 가까운 물가상승을 겪어야하는 상황. 물질적 자원을 가진 한민당과 이념적 자원을 가진 공산당이 서로 적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중도파가 주도하는 합작을 막는데 서로 호응한 구조적 문제. 김구가 무리한 반탁운동에 나선 데는 전국조직 수립ㆍ임정법통 강화의 기회로 본 전략적 판단.
6장 쪼개진 임정, 굳어진 좌우대립(1946. 1. 17 ~ 31). 성과 없이 막을 내린 미소공동위로 연합국의 ‘조선독립’ 방침이 4년 만에 포기되고, 유엔은 남한단독 건국의 뒷바라지. 통일 민족국가 건설을 등진 이승만과 한민당, 대다수의 경찰관과 자본가. 미군정의 질서유지 방식은 일본 식민지배자들보다 더 야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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