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대빈창 2025. 1. 6. 07:30

 

책이름 :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지은이 : 도정일

펴낸곳 : 문학동네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담겨 있던 구절이다. 나에겐 문학이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요약해주는 말”이라고 ‘실천적 인문학자’ 도정일(都正一, 1941- )은 서문에서 말했다. 그는 인간ㆍ사회ㆍ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적 가치의 실천에 주력해왔다.

‘도정일 문학선 4’로 출간된 문학에세이는 3부에 나뉘어 25편의 무게 있는 글들이 실렸다. 1부 ‘지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으로 문학의 근본적인 속성과 그것에 내재한 힘을 이야기했다. 섹스와 죽음이라는 오래된 현실로부터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에 대한 인간의 경험 내용이 제각각의 고유성, 개별성, 구체성을 갖기 때문.

문학이 문화산업이라는 거대 산업체제에 편입되어 그 산업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능적 생산 기지의 하나로 작동할 것을 강요. 타인에 대한 이해, 동정, 사랑의 능력은 내가 타인이 되어 타인의 자리에 서서 생각해본다는 위치이동의 상상력. 영상이 제시하는 시각이미지는 문자에 의한 이미지(심상)보다 훨씬 강렬하고 직접적이지만 이미지가 촉발하는 연상의 밀도와 범위는 문자이미지의 경우가 더 강하고 풍부.

세계문학전집은 사람들이 흔히 고전, 명작, 혹은 걸작 등등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작품들을 선별적으로 집성해놓은 문학컬렉션. 우리 사회는 기본을 소홀히 함으로써 끊임없이 실패를 예약했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죽고 어른들은 병들고 사회적 삶의 고통은 늘어갔다. 비평은 문학작품의 물질적 현실로서의 언어에 주목하고 그 현실의 구성 원칙, 구성 방법, 작동법을 관찰, 평가, 성찰의 대상.

비평이 사회적 소통력을 잃게 되는 것은 비평담론이 독자 대중의 삶과 가치에 연결되지 않고 독자의 관심과 비평의 관심 사이에 ‘현해탄’이 가로놓였기 때문. 시장성이 없거나 허약한 학문들은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교육의 다위니즘.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표현하는 능력, 의미를 생산하는 능력, 타인과 소통하고 타문화를 이해하는 인문적 능력.

2부 ‘이론은 문학을 죽이는가?’는 이론이란 작품의 이해를 확장함으로써 독자를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하는 일이다. 이론이 문학에 대한 이해, 경험, 사유를 넓히고 깊게 함으로써 예술과 함께 존재의 확장에 기여. 예술 행위의 정당한 목표는 권력의지가 아니라 그 의지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이며 현상 질서의 유지가 아니라 그 질서의 파열.

9ㆍ11사태와 함께 문학의 상상력은 종결의 광기와 순수의 광기 사이에서 그 날개를 움직이는 힘은 나르시시즘적 자기애가 아니라 자신과 타자를 연결시키는 컴패션.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대중적 열망의 심부에 대한 통찰, 인간과 사회의 복잡성에 관한 이해, 역사와 문명에 대한 인문적 성찰 등과 결합한 탁월한 이야기꾼. 트리니나드 출신 영국 작가 비디아다르 수라지 프라시드 나이폴V. S. Naipaul의 소설은 구식민지 변방 인간들의 좌절과 비감을 그려내면서도 그들에 대한 인간적 사람의 능력은 봉쇄되거나 거절.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정책 당국의 개탄할 만한 인식 결여, 유능한 인적 자원의 부족, 그 자원을 길러내기 위한 정책과 투자의 빈곤 등이 번역문제의 더 근본적인 사안. 억눌린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약한 것들의 숨소리를 듣고 타자를 이해하여 공존의 정의를 모색해 온 것은 문학의 핵심적 전통.

3부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ㆍ사회적 문제가 문학이라는 형식과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이야기했다. 세계에서 가장 참담한 근현대사를 겪어온 민족으로서 문학이 빈곤하고 미미한 것은 문제 구성력의 빈곤에 결정적으로 연유. 민주사회의 문명사적 과제는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는 정글법칙적 생존이 아니라 문명사회적 가치들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살아남는 품위 있는 생존.

당대 작가들의 심각한 결핍은 시야의 협소성 문제와 민족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주제의 구성력 빈곤이라는 문제. 생태환경의 지속적인 약화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개발의 이데올로기는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배적인 사회담론. 순수문학론이 이념문학론이라는 사실을 덮어둔 채, 문학의 역사성을 얘기하는 쪽을 향해 거꾸로 ‘문학의 이념화’라고 뒤집어씌우는 전도행위.

터키 역사에 뿌리를 두지 않은 어떤 전통과 가치를 가져다 터키 땅에 접붙이면서 그 만남에서 오는 갈등, 충돌, 비애, 역설의 경험들을 담아내는 것이 오르한 파묵의 문학. 통일 시기의 문학은 지금의 남한문학과 대차없는 부정과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것. 예술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 모더니즘으로부터의 단절 선언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모더니즘의 극단적 연장.

마지막도 서문(5쪽)에서 옮겨왔다. “문학은 당대에 뿌리를 두고서 당대가 넘으려다 넘지 못한 불완전성, 뚫고자 했으나 다 뚫지 못한 한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와 소통하면서 당대를 넘어선다. 한계는 그저 한계가 아니라 다음 시대의 잠재성으로 남는다. 문학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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