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대빈창 2024. 12. 30. 07:30

 

책이름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지은이 : 김기찬·황인숙

펴낸곳 : 샘터

 

군립도서관 홈페이지의 ‘작은도서관’ 검색창에 시인 ‘황인숙’을 때렸다. 시집을 뒤로 물리고, 포토에세이를 대여목록에 올렸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은 사진가 김기찬의 사진에, 시인 황인숙의 글을 엮은 사진집이었다. 각 장마다 30컷씩, 5개의 장에 나뉘어 모두 150컷의 사진들이 실렸다. 5개의 장은 '꽃과 동물', '사람들', '지붕과 기와', '담장과 벽', '그늘과 적막'. 나에게 낯선 이미지였다. 책은 앞서 잡았던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과 같이 사진과 문학의 만남이었다. 두 사진에세이의 차이점은 흑백과 컬러 사진이었다.

책을 열면 먼저 두 편의 ∥작가의 말∥이다. 사진가는 「좁지만 넓고 깊은 골목의 세계」에서, “골목의 세계는 결코 변방의 세계가 아니다. 골목 안에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가족이 있다. 골목 안에서 사람들은 꽃을 가꾸고 짐승을 키우기도 한다. 이런 작지만 애잔한 풍경들은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9쪽) 시인은 「골목 생각, 고향 생각」에서, “빛도 그림자도, 시간까지도 살아 움직인다. 존재하는 것들의 유한성에 반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현재는 눈물겹다. 또한 눈부시다! 동사는 눈이 신 현재를 생생히 실어 나른다.”(10쪽)라고 말했다.

사진가 고故 김기찬(金基贊, 1938-2005) 선생의 수식어는 ‘골목 안 풍경’이었다. 1966년 처음 카메라를 잡은 이래, 36년간 그의 관심은 늘 서민들 곁에 있었다. 선생은 주로 산동네·달동네라 불리는 서울의 가난한 동네를 오랫동안 찍어왔다. 시인 황인숙(1958- )은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문단에 나왔다. 시인은 그동안 아홉 권의 시집과 산문집, 사진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시인은 남산 언저리 골목 동네에 터를 잡고 시를 써왔다. 포토에세이에 실린 「아주 외딴 골목길」(171-172쪽)의 전문이다.

 

이 외딴 골목길 / 빗방울도 처마에 부딪쳐 / 자주 발 딛지 못하는 곳 / 길이라기보다는 틈 / 낡은 장롱 같은 집들의 틈 / 그 틈, 더 좁아지지 않도록 / 시멘트로 다져놓았다 // 길인 듯 아닌 듯 / 숫기 없는 사람은 그 앞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 인기척 없는 집들의 / 인적 없는 / 이 외딴 골목길 / 스티로폼 상자와 고무 양동이 안에 / 나팔꽃 복숭아가 피고 지던 흙이 굳어 있다 / 불 안 드는 빈방처럼 / 이 어린애 같아 보이는 길 / 정착은 나이배기일 것 같은 길 / 시멘트가 빈틈없이 깔려 있는 / 그러나 이 야성적인 길

 

마지막은 137쪽의 〈1990년 서울 오금동〉에서 잡은 컷이다. 달동네의 허물어져가는 담벼락에 백묵 낙서가 어지럽고, 두 아이가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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