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깨달음의 혁명
지은이 : 이반 일리치
옮긴이 : 허택
펴낸곳 : 사월의 책
지금까지 도서출판 《사월의책》에서 출간한 ‘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 일곱 권을 모두 손에 잡았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학교 없는 사회』는 오래전, 진보적 법학자 박홍규가 옮긴 《생각의나무》에서 출간된 책을 읽었다. 서구 문명의 중심을 이룬 기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분석한 『공생공락의 도구』, 의학 분야에서 생소한 ‘문화적 의인병醫因病’을 다룬 『의료의 한계』 두 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출판 《 느린걸음 》의 대표로, 옮긴이 허택이 낯익다. 시리즈에서 『젠더』를 번역했다. 책의 원제는 『Celebration of Awareness』로 ‘깨어있음에 대한 예찬’이었고, 표지그림은 야수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춤, The Dance〉(1910)이다. 『깨달음의 혁명』은 1960-70년대에 쓴 12편의 글을 모은 첫 저서로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의 ‘이후에 발표된 모든 책의 서문이자, 새로운 혁명에 대한 선포’였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교육, 교회, 경제개발, 미국의 경제개입 등 1960년대 이후 현대 사회를 움직여 온 각종 제도들과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폭로하며 깨어있는 시민의 저항을 촉발시켰다. 제도적 타락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학교 교육이었다. 볼리비아는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공교육에, 또 그만큼의 반을 사교육에 쏟아 부었다. 교육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학령기 인구의 1퍼센트가 소비했다. 볼리비아에서 대학생에 쓰는 공적자금은 중위소득 수준의 시민에게 돌아가는 몫보다 1천배 이상 많았다.
다수가 소외된 사회에서 학교는 교육에 잠재한 체제전복적인 힘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가져왔고, 저학년부터 고분고분하게 순치된 학생만 상급반으로 보내졌다. 학교 교육이 사회의 일원임을 확인시키는 품질보증 과정이 되었고, 사회적합성의 평가 기준은 젊은 시절 공적 교육에 들인 시간과 돈이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도 하나의 제도로서 ‘카르텔’을 구성했다. 성직자 독신주의, 성직자의 사제직 독점이 카르텔을 만드는 주요 수단이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미국이 주축이 되고 라틴아메리카 22개국이 참가한 경제개발 계획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은 제도적 강요를 국제적 차원으로 넓혔다. 풍요와 발전을 기치로 내건 동맹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방식을 제3세계에 강요했다. 경제 수준에 맞지 않는 기술과 설비의 수출은 토착산업을 고사시켰다. 가난한 이들에게 선진국 상품의 소비를 강요했다. 이는 개발도상국 상층부만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부익부빈익빈을 극대화시켰다.
서문에서 에리히 프롬은 이반 일리치 사상의 정수를 ‘인본적 급진주의 humanist radicalism'로 정의하며 “인간적 급진주의는 어떤 이념이나 제도건 더 큰 삶의 활력과 기쁨을 누릴 수있는 인간의 역량을 키우는가 아니면 방해하는가”라는 관점을 고수한다고 했다. 1970년대의 이반 일리치는 인간의 자율을 억압하는 현대의 기술과 제도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집중했다. 《사월의책》에서 출간하는 ‘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였다. 핵심 개념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 은 '병원은 병을 만들고, 학교는 학생을 바보로 만들고, 교도소는 죄수를 양산하고, 고속도로는 차를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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