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대빈창 2024. 12. 23. 07:30

 

 

책이름 :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지은이 : 이반 일리치

옮긴이 : 신수열

펴낸곳 : 사월의책

 

『의심에 대한 옹호』의 저자 피터 버거의 추천평은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였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 사상의 핵심은 현대 문명의 성장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성마저 파괴할 위험이 있으므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절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의 원제는 『Energy and Equity, 에너지와 공평성』이다. 책은 에너지 과잉 소비에 기초한 현대 수송산업이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지를 고발했다. 과도한 에너지 소비가 물리적 환경을 파괴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관계를 필연적으로 퇴보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옮긴이 신수열이 낯익다. 〈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전문가들의 사회』를 번역했다.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 법무부차관보 호세 안토니오 비에라 갈로의 헌사獻辭는 “사회주의는 자전거를 타고서만 올 수 있다.”였다. 책은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의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에서 열린 세미나 모임에서 토론한 내용을 요약했다. 구성은 머리말과 열 개의 장, 그리고 진보적 법학자 박홍규의 해설 「에너지, 자동차, 그리고 사회적 비용」이 반가웠다. 《사월의책》의 ‘이반 일리치 전집’ 시리즈에서 패스시킨 유일한 책이 『학교 없는 사회』였다. 오래전에 《생각의나무》에서 발간한 박홍규가 옮긴 책을 잡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한 사회가 가진 가용에너지의 대부분을 독점했다. 도로 건설비, 주차장 등의 공공시설 인프라 구축과 환경오염을 유발시켜 막대한 세금을 탕진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속도를 확보하는데 투입되는 세금은 자동차 없는 사람들도 똑같이 부담했다. 자동차의 속도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출퇴근 대중교통의 러시아워에 구속되는 사이, 소수는 가장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이동하고 비행기를 탔다. 미국인의 전체 비행거리 5분의 4를 1.5퍼센트의 인구가 독점했다.

평균적인 미국 남성은 1년에 1,600시간 이상을 차에 투자했다. 주행ㆍ정차를 넘어 자동차를 사기위해 돈을 벌어야하고 연료비, 보험료, 세금, 교통위반 범칙금으로 상당부분 노동시간을 소비했다. 하루에 깨어있는 16시간에서 4시간에 달했다. 좁은 국토에 자동차대수 2천만대를 일찌감치 넘어선 한국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국가와 정부 탓이었다. 개인이 아닌 사회가 제도적 불공정을 조장한 것이다.

에너지 낭비와 속도의 무익함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반 일리치는 자전거를 내세웠다. 자전거의 속도는 보행 5-6킬로미터보다 3-4배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에너지는 보행의 5분의 1밖에 사용하지 않는 최고의 이동수단이다. 화석연료를 쓰는 모든 기계보다 열역학적 효율이 높았으며 이동능력이 뛰어났다. 자전거 주행에 드는 인프라 건설은 자동차보다 턱없이 낮았다. 자동차 한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자전거 18대를 세울 수 있다. 주행 공간도 30분의 1이면 충분했다.

'근본적 독점radical monopoly'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없었던 ‘필요’를 만들어내고, 산업적 생산물이 아니면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도록 만든 것을 가리켰다. 인간의 타고난 이동 능력을 수송산업이 장악하고, 그 생산물인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해진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책은 에너지 위기나 생태 위기와 같은 표면적 이유를 넘어 ‘자전거’로 상징되는 적정에너지, 적정기술이 어떻게 한 사회의 행복에 이바지하는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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