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샤워젤과 소다수

대빈창 2025. 2. 6. 07:30

 

책이름 : 샤워젤과 소다수

지은이 : 고선경

펴낸곳 : 문학동네

 

문학동네시인선 200호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서 시인을 만났다. 티저 시집은 앞으로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펴낼 시인들의 신작시를 실었다. 기념 시집에 실린 시인의 詩는 「파르코백화점이 보이는 시부야 카페에서」였다.

시인들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공통질문을 던졌고, 시인들은 한 문장으로 답했다. 시인의 도발적인 답변이 나의 뇌리를 자극했을 것이다.

 

시란 자취방 빼내던 날 옷장 속에 두고 온 딜도 같은 것.

 

시인은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이문재ㆍ정끝별의 심사평은 이러했다. “‘시적 패기’로 써나갈 시의 힘이 기대”된다.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은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듯한 세상에 희망이라는 농담을 던지며 자신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는 청년세대’를 그렸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1편을 담았다. 시인ㆍ문학평론가 박상수는 해설 「망할 세상에서 농담하기―스트릿 문학 파이터 분투기」에서 말했다. “고선경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지배하는,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는 방식으로 아무도 지지 않는 게임을 하려는 사람”이라고.

문학동네시인선 202호 시집은 23년 10월에 출간되었다. 출간 이듬해 문학동네시인선 시집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시집 편집, 베테랑 시인 김민정은 “작가가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소설과는 달리 흩뿌려진 시구와 단어에서 일부만 취할 수 있는 시는 특히 인스타그램 시대에 독자를 주체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표제시 「샤워젤과 소다수」의 1 ~ 6연이다.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 투룸 신축 빌라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십,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두 시간 동안의 폭우, 일주일 동안의 아침, 유리병 속 무한히 터지는 기포 //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닮았어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청보리밭에 가고 싶다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릴 때 나는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 아침의 어둠이 이젠 익숙해 / 그래도 같이 씻을까 / 산책을 갈까 //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 /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 네 손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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