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잔잔한 웃음
지은이 : 김준영
펴낸곳 : 학고재
〈학고재 산문선 14〉 『잔잔한 웃음』은 고전학자 김준영(金俊榮, 1920-2015)의 산문집이었다. 지은이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책장을 둘러보았다. 『입에 익은 우리 익은말』(학고재, 2006)의 저자였다. 여기서 익은말(熟語)은 속담으로 속담사전이었다. 부제가 ‘어느 쾌락주의자의 고전 이야기’로, 책의 구성은 5장에 나누어 58편의 글을 담았다.
1장 ‘옛 세상 이제 세상’의 9편에서 뇌리에 오래 남은 이야기는 첫꼭지 「이과부 이야기」에 나왔다. 광산이씨光山李氏 이발李潑 자손들은 연일정씨延日鄭氏와 통혼하지 않았다. 도마에 놓고 잘게 써는 것은 사투리로 ‘송강송강’ 썬다고 한다. 여기서 송강은 ‘정송강鄭松江’을 가리켰다. 서인의 영수 정철鄭澈은 좌의정으로, 동인을 탄압할 때 부제학副提學 이발과 어머니, 아들은 물론 일가를 모두 잔인하게 매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 마지막 꼭지 「성씨를 바꾼 사람들」은 양반을 극도로 따지던 조선후기에, 호패號牌를 유실했다는 이유를 대면 주소지에서 새로 발급받을 수 있어 성씨를 바꾸기가 어렵지 않았다.
2장 ‘삶과 생명의 신비’는 짧은 글 14편으로, 「애주가와 식도락가」에서 팔진미八珍味를 배웠다. 용의 간, 봉의 골, 토끼의 태, 잉어 꼬리, 독수리 구이, 곰 발바닥, 원숭이 입술, 표범의 발굽.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새끼와 강제로 떨어진 어미의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는 꾀꼬리. 단장斷腸의 고사古史에 얽힌 원숭이 모성애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3장 ‘재치와 익살이 있는 옛이야기’의 9편의 글에서 저자의 어릴 적 낚시에 얽힌 에피소드를 다룬 「한번은 좋았으나」가 재미있었다. 소학교 3학년 이웃마을 동급생을 따라 고향 근처의 큰 호수 황등호黃登湖로 처음 낚시를 갔다. 몸뜽이만 서너 뼘 되는 큰 잉어를 겨우 강변으로 끌어올렸다. 의기양양해서 잉어를 등에 메고 돌아왔고 짬만 나면 낚시질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눈 먼 잉어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성적만 떨어져 부끄럼을 당했다.
4장 ‘우리말의 묘미’ 10편과 ‘5장 '한국의 풍수설화' 16편은 수필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활감정이 깊이 스며든 것으로 저자가 수집한 이야기였다. 「씨암닭을 잡는 이유」는 흔히 씨암탉을 살찐 암탉으로 알고 있으나, 병아리를 깰 씨암탉으로 귀중하게 아끼는 암탉을 가리켰다. 「고수레의 유래」를 새롭게 알았다. 가산은 부유하나 자손이 없는 고씨의 부인에게 지관이 찾아왔고, ‘무자손만대봉사지지無子孫萬代奉祀之地’ 명당을 일러주었다. 과부가 죽고 무덤을 쓰자, 주변 넓은 들의 곡식이 자라지 못했다. 농민들은 무덤을 그곳에 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제사를 지냈다. 주변 수천 농가가 모여 성대히 제사를 지냈더니 큰 풍년이 들었다. 농민들은 농사철에 들밥을 먹으면서도 ‘고시레’를 던져 고씨의 혼을 위로했다. ‘氏’의 고음古音은 ‘시’로, 고씨의 부인은 ‘고씨네’가 된다.
표지그림을 보며 ‘잔잔한 웃음’이 아니라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삼재三齋로 불리던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 - 1715)의 그림이었다. '조선 최고의 초상화’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 제240호였다. 그림은 <낙마도(落馬圖)>의 부분으로 중국 북송의 선비 진단을 소재로 삼았다. 좋은 임금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기뻐하다가 그만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지나가던 젊은이가 뒤돌아섰고, 황망한 시동은 책꾸러미와 두루마리를 내팽개친 채 주인은 향해 뛰어가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