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한국문화재 수난사

대빈창 2025. 2. 5. 07:30

 

책이름 : 한국문화재 수난사

지은이 : 이구열

펴낸곳 : 돌베개

 

1996. 9. 10. 붉은 스템프의 구입날짜가 선명했다. 1990년대 내가 구한 책들은 여지없이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에서 샀다. 손에 들고 얼마나 설레였던가. 책은 10쇄 제작을 하며 새로운 표지로 꾸몄고, 자료사진을 보강했다. 책은 처음 『한국문화재비화』라는 표제로 1973년에 출간되었다. 내가 잡은 책은 개정증보 초판본이었다.

책장을 훑어보니 靑餘 李龜烈 先生 回甲記念論文集 『근대한국미술논총』(학고재, 1992)이 눈에 띄었다. 그시절 나는 출판사 《학고재》의 책은 보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손에 넣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기자ㆍ미술평론가였던 故 이구열(1932-2020) 선생의 글을 처음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문화재 수난사』(1996)에 이어, 『북한미술 50년』(돌베개, 2001)을 잡았다.

책은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낸 우리문화재 수난사였다. 불교미술학자 황수영은 추천사에서 말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본인 무뢰한들은 무리를 이루어 백주 대낮에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폭악무도한 고분도굴을 감행”했다. 1장 선각의 인맥은 우리문화의 개척자ㆍ수호자들의 업적을 모았다. 한국 금석학의 체계를 세운 선구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한국 서화사와 민족문화재 연구를 실질적으로 개창한 최초의 근대 인물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한국미술사의 실질적인 개척자 우현又玄 고유섭 高裕燮. 무형문화재 조사ㆍ연구에 투신한 정열적인 개척자 석남石南 송석하宋錫夏. 민족문화재의 참다운 수호자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2장 국보급 문화재와 중요 사적들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밝힌 일제하의 수난. 1905년 전후 개성과 강화도에서 일본인 골동상과 호리꾼들은 수백수천의 고려고분을 파헤쳐 고려자기와 부장품을 약탈. 이토 히로부미는 수천 점의 고려청자를 일본으로 반출하여 일본인들의 도굴행위를 조장.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되돌아오는 시련을 겪은 경천사십층석탑. 1909년 2대 총감 소네 아라스케의 경주 초도순시 후 사라진 석굴암의 대리석 오층석탑. 석굴암 감실龕室의 석상石像 두 점. 다보탑 상층기단 네 귀퉁이의 돌사자상 넷 중에서 상태가 좋은 세 점. 조선총독부가 1943년 각 도경찰부장에게 지시ㆍ명령한 항일민족의식과 투쟁의식을 유발시키는 민족적인 사적비를 모조리 파괴. 일본인 약탈자들이 바꿔치기한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오십삼불. 일본인들이 정으로 떼어간 굴불사堀佛寺 사면석물四面石佛.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빼돌린 규장각 33부 563책. 1914년 동경제국대학으로 실려간 오대산 사고본. 가야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4판 도난. 세키노는 낙랑고분 한대漢代의 풍부한 부장품을 일본으로 반출. 일본 스파이 장교 사고 가게도부의 광개토왕릉비 비문조작. 수천수만기의 가야ㆍ신라ㆍ백제ㆍ고려 고분은 일본인 무법 약탈자들에게 일확천금의 지하보고地下寶庫.

3장 구한국시대 서양인들의 한국문화재 수집을 다룬 서양인 수집. 서울주재 프랑스공사 콜랭 플랑시는 1903년까지 수백권의 고서古書 수집.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旨心體要節〉을 서울에서 입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가 30년 동안 모은 알짜배기 고려자기 컬렉션을 몽땅 인수하여 도쿄에서 서울로 되가져온 간송 전형필. 고려불화는 구한말이후 약탈당했거나 어리석은 중들이 헐값으로 팔아넘겨 구미로 전매專賣되어 나간 것.

4장 8ㆍ15 해방직후는 일제 패망 후의 적산문화재 접수 과정, 일본으로 문화재를 빼돌리려는 약탈자들의 이야기. 알짜 한국문화재들을 밀선密船을 이용하여 빼돌린 대구의 오구라, 이치다 같은 악명 높은 수집가들. 조선철도 주식회사 전무 시미즈淸水辛次는 백자항아리를 적당한 시기까지 보호해달라고 한국인 친구에게 맡겼으나 보관자의 아들이 골동가에 판 국보 제107호 〈백자철사포도문항아리〉.

5장 전쟁 포화 속에서 지켜낸 박물관 유물, 파괴되거나 행불된 국보들의 이야기 한국전쟁과 잃어버린 국보. 월정사가 불탈 때 녹아버린, 강원 오대산 골짜기에서 1948년 10월 발견된 정원 20년(신라 애장왕 5년, 804년)에 주조됐다는 명문銘文(147자의 이두문)의 국보급 제3 신라종. 행방불명된 국보 제413호의 〈청화백자진사도문대접〉. 무등산 증심사證心寺의 국보 제211호 〈금동석가여래입상〉, 국보 제 212호 〈금동보살입상〉. 강원 간성 건봉사 乾鳳寺의 국보 제412호 〈마지금니화엄경〉. 국보 제419호 정호貞祜 2년명(고려 고종 1년, 1214년)의 〈동제은상감향로〉. 국보 제240호의 전남 장흥 보림사 대웅전.

6장 우리 힘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을 다룬 매장문화재.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1946년 5월 ‘호우총壺杅塚’ 발굴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 기면 특별 청동합형용기를 발견. 1959년 12월 경주 감은사感恩寺 삼층석탑 서탑 해체ㆍ수리 과정에서 사리탑 발견. 1963년 경북 의령 도로공사장에서 인부가 고구려 연가延嘉 7년명의 국보 제119호 〈금동여래입상〉 발견. 1967년 서울 삼양동 비탈에서 국보 제129호 삼국시대 〈금동관음보살입상〉 발견.

7장 도굴ㆍ도난ㆍ위조품. 1963년 신라ㆍ고려고분을 2년동안 도굴하여 유물 400여점을 빼돌린 경북 달성 현풍도굴사건. 고령고분에서 도굴한 국보 제138호 금관을 재벌 이병철이 입수했으나 무죄. 도굴꾼들의 손에서 위기일발 벗어난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국보 제126호 세계 최고 목조인쇄물 〈무구정광다라니경〉. 경주박물관의 국보 제88호 〈과대와 요패〉는 도난당했다가 운 좋게 생환. 국보 제119호 연가 7년명의 〈금동여래입상〉의 도난당했다가 되돌려진 미스터리. 구한말이후 일본과 그 밖의 외국에 유출되고 혹은 빼앗긴 문화재가 10만점 이상 될 것으로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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