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해방일기 9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너머북스
합리적 보수주의 역사학자는 극한대립으로 보이는 오늘의 정치현상을 적대적 공생관계로 보았다. “상대방 세력을 ‘좌빨’ 또는 ‘수꼴’로 부르는데 이는 양쪽 세력의 일부분일 뿐이다. 공생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그들이 양쪽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60여 년 전 해방정국에서 극좌와 극우 사이에 적대적 공생관계가 맺어진 이래 긴 세월을 통해 굳어졌다.”
『해방일기 9』는 미소공위 결렬과 조선문제 유엔상정으로 분단건국 가능성이 짙어져 가는 시기를 다루었다. 이남은 실질적인 단독선거로 향했고, 이북은 유엔위원단의 이북 지역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군정의 극우 탄압과 경찰의 폭력과 우익 테러가 횡행하는 가운데 선거의 자유 분위기는 바랄 수 없었다. 1948년의 조선은 분단, 독재,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9권의 부제는 '해방된 자, 누구였던가'로, 시간대는 1948. 1. 2 ~ 4. 29. 이었다. 차례는 4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역사학자는 서문 「김구의 각성은 때를 놓친 것이었던가?」에서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일본제국과 독일제국에서 분리 독립시킬 연합국의 방침은 1943년 가을 확정되었다. 독일과 일본이 항복할 때 연합국의 눈에는 조선인과 오스트리아인은 일본과 독일을 도와준 죄가 컸다. 일정기간의 신탁통치 결정에서 조선인에게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었기에 오스트리아의 10년보다 가벼운 5년의 신탁통치가 부과”(7-8쪽)되었다.
1장 유엔에서 온 ‘칙사’들(1948. 1. 2 ~ 30). 경찰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고 통제가 느슨하던 경비대에는 많은 좌익 청년이 탄압을 피해 복무. 경찰관이 사회의 요구를 돌아볼 필요 없이 임명권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파시스트 국립경찰체제를 만든 경무부장 조병옥. 분단건국은 자연스런 통합 상태로 돌아가려는 민중의 의지가 공격성으로 나타나 전쟁을 일으키고, 이쪽 체제만 정당하다는 양보할 수 없는 주장은 자유를 허용할 수 없는 독재체재. 해방공간 남조선의 족청(조선민주청년단)의 1948. 8. 건국당시 단원 수는 백만명을 넘어섰고 이범석의 파시즘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모델.
2장 진면목을 찾은 김구(1948. 2. 1 ~ 27). 극좌파는 유엔위원단을 거부, 남은 남, 북은 북 제 갈 길로 가게 해서 소련에 의지하는 ‘혁명기지’를 이북에 확보하는 길. 1948. 2. 10. 발표된 민족주의자의 진면목을 뒤늦게 보여준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김구의 귀국 이래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온 반탁운동은 미소공위를 좌초시켜 분단건국 노선을 도운. 이승만과 한민당은 빠른 총선거 실시를 원했고, 이남만의 총선거로 전 조선인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 미국이 제안한 가능지역 선거를 통한 중앙정부 수립 방침 가결, 인도 대표 메논은 중앙정부 즉각 수립 반대에서 일주일 사이에 태도 돌변. 소총회는 안보리의 소련 거부권에 막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제안해서 만든 한시적 1년간의 편법기구.
3장 남북협상의 동상이몽(1948. 3. 1 ~ 29).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추대한 한성임시정부는 1919. 4. 하순에 수립 선포한 종이 위의 실체 없는 기구로 이승만은 대통령을 참칭. 조병옥은 만 18세이상 55세 이하의 남자는 단원이 될 의무가 있는 향보단鄕保團 설치. 남조선을 폭력경찰 국가로 만든 조병옥과 장택상. 우익 독촉회의가 이승만의 사조직으로 변질된 것은 신익희(申翼熙, 1984-2956)가 김구에서 이승만 쪽으로 붙은 것이 크게 작용. 독촉국민회는 납치 살해 극한 테러의 상징 김두한(金斗漢, 1918-1972)의 구명운동 전개. 이승만과 한민당은 경찰과 우익 테러조직을 동원하여 선거 거부에 공감하는 인민을 선거인으로 등록. 1946. 3ㆍ1절 평양폭탄 테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김구는 이북에서 최고 악질 반동분자로 꼽히는 인물.
4장 목소리를 빼앗긴 민족주의(1948. 4. 3 ~ 29). 1947. 3ㆍ1절 행사군중에 대한 경찰의 무분별한 총격으로 10여명 사상자를 낸 ‘제주 3ㆍ1절 발포사건’. 총선위가 발표한 유권자 91.7퍼센트 800여 만 명 등록은 한국여론협회 조사결과 서울의 유권자 26퍼센트가 대리등록, 91퍼센트가 강요당했다고 응답. 홍명희(洪命熹, 1888-1968)와 한글학자 이극로(李克魯, 1893-1978)는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문화정책에서 큰 역할을 맡아 눌러앉았다.
유엔조선위원단은 3. 12. ‘가능지역 선거’를 4대 2(기권 2)로 의결. 찬성 4개국 중 3개국은 자국 형편에 따라 찬성이 예상되는 나라들. 모윤숙(毛允淑, 1910-1990)은 ‘건국의 어머니’, 메논은 ‘건국의 아버지’란 말은 메논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킨데서 나왔다. 여류시인 모윤숙은 영어 잘하는 여성들의, 주한 외국인을 상대로 고급외교를 조직한 비밀사교단체 ‘낙랑클럽’의 회장. 다수결로 단독선거안이 통과되면서 모윤숙과 인도 대표 메논 단장과의 치정설이 불거졌고, 성로비설까지 나돌았다. 나는 1986년 도서출판 거름에서 펴낸 정경모의 초판본 『찢겨진 산하』를 통해 정치모리배 이승만의 지저분한 현대사를 접했다. 부제가 ‘김구ㆍ여운형ㆍ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로 세 분이 사후세계에서 만난 펼치는 가상대담이었다.
역사학자의 충고가 따끔했다.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쥔 자들만을 성공한 자로 받들며 좋은 뜻을 갖고도 좌절당한 이들을 무시하는 이 사회의 풍조가 바로 매판세력의 속성입니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나 자신의 매판성을 판성할 때 치욕과 고통의 역사를 벗어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