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무족영원
지은이 : 신해욱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무족영원無足蠑螈은 양서류의 한 종이다. 영원이란 이름만 붙었을 뿐, 도롱뇽, 영원과는 목(order) 단위부터 달랐다. ‘발 없는 영원’이라는 뜻의 무족영원은 양서류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렸다. 무족영원의 머리 쪽에 퇴화한 눈의 흔적이 남아있다. 시력은 거의 감퇴했고, 대신 감각기관의 발달로 작은 동물을 사냥했다.
이런 걸 두고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표제를 보고 무턱대고 군립도서관의 시집 코너에서 빼들었다. 낯선 시인이었다. 이름을 보고 남성으로 알았는데 여성 시인이었다. 시인은 1974년생으로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보름 전에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호 기념 시집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를 잡았다. 기념시집은 501호부터 509호까지 뒤표지 글을 실었다. 『무족영원』은 시인선 535호였다. 뒤표지 글은 네 글자 단어들이 네덜란드 출신의 추상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0년)같은 모양을 했다. 인쇄하기가 까다로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기념시집에서 본 것도 같았다.
차례는 3부에 나뉘어 51편이 실렸다. 시집은 발문ㆍ해설이 없었다. 심지어 표사마저 없다. 차례의 순서도 Ⅲ―Ⅰ―Ⅱ이었다. 「시인의 말」도 반으로 나누어 시집의 처음과 마지막에 실었다. 편집 구성이 특이한 시집이었다. 겉표지의 시인 컷이 낯설다. 그린이가 상첵이었다. 피카소의 큐비즘과 닮은 것도 같았다. 무족영원의 머리와 꼬리처럼 처음과 끝의 경계가 사라진 것일까. 詩를 이해하는데 있어 색맹에 가까운 나의 독해력에 대략 난감한 시집이었다.
2021. 9. 17. 〈서울신문〉의 칼럼은 시인의 「미래의 추석에 우리는 어떤 윗세대가 되어 있을까」였다. 시인 부부는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막대한 온실가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고기를 끊자는 남편의 제안에 채식을 시작한 지 반년이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동참하고 있었다. 시인 부부가 다짐을 잘 지켜낼 것이라고 나는 응원을 보냈다. 시인의 시집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 군립도서관에 비치된 『생물성』과 『Syzygy』를 대여도서 목록에 올렸다. 마지막은 표제시 「무족영원」(16쪽)의 전문이다.
깊은 잠을 자는 개의 규칙적인 숨소리 옆에는 / 음을 영원히 놓친 / 가수의 표정만이 허락된다고 하지. // 그런 표정을 연습한 적이 없으니 /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 애국가보다 재미있는 노래를 하나라도 떠올리기 위해 / 애를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 무족영원의 순간이라 중얼거려봅니다. // 열대에 서식하는 백여 종의 눈먼 생물이 / 양서류 무족영원목 무족영원과에 속한다고 합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0) | 2025.03.18 |
---|---|
책을 만나러 가는 길 (5) | 2025.03.17 |
인류의 진화 (1) | 2025.03.12 |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7) | 2025.03.11 |
광야 (2) | 2025.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