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대빈창 2025. 3. 11. 07:00

 

책이름 :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지은이 : 허수경

펴낸곳 : 난다

 

도서출판 〈난다〉에서 출간된 故 허수경(1964-2018) 시인의 유고집에서 산문집 『오늘의 착각』에 이어 두 번째 잡은 책이었다. 시인의 2주기에 나온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는 독일에 살던 시인이 2009년 《한국일보》 지면의 〚시로 여는 아침〛에 연재했던 50편의 시 해설집이었다. 시인은 1992년 늦가을 혼자 독일로 떠나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 해설집은 50편의 시에 짧은 감상을 덧붙였다. 실린 詩들에는 시성詩聖이라 불린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 불운한 삶을 살다간 조선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 밥 딜런(1941- ). 외국 시인으로 루마니아계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1920-1970).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1875-1939) . 독일계 유대인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 오스트리아 시인 에리히 프리히드(1921-1988).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포르투갈 시인의 필명 알베르투 카에이루. 튀르기예 시인 나즘 히크메트(1902-1963). 일본 시인 니시하라 요시로(1915-1977).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동독출신 여류시인 에바 슈트리트마더(1930- ).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詩가 실렸다.

시인은 말했다. “오늘날 시인으로 산다는 건 스스로 저만의 어떤 삶의 형식을 택하는 일”이라고. 표제는 김수영의 「사랑」의 1연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를 해설하면서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너의 얼굴을 모른다’에서 따왔다.

 

어느 날 내 머릿속 얽은 눈이 저렇게 싹을 틔운다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보자기는 가위를 가위는 바위를 바위는 보자기를 이기지 못하지 숨바꼭질 술래를 정하면서 아이들은 삶의 부조리를 배운다 무궁화꽃이 아무리 피어도 술래는 움직이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된 것들을 저장해야 저렇게 동그래질까? 추억은 때로 독이 되어서 요리할 때는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 싹이 틀 때 감자는 얼마나 아플까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두 번째 詩 유형진의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의 2연이다. 나는 詩를 ‘문학동네포에지 9’로 재출간된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문학동네, 2020)을 통해 읽었다. 표제가 눈길을 끌어 손에 잡은 시집이었다. 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지난해 하지감자 농사는 폐농 직전이었다. 진딧물이 옮기는 바이러스를 방제하려면 고랭지에서 수확한 보급종 감자를 묻어야했다. 어머니는 몇 년째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씨감자로 삼았다. 한계에 부딪힌 것일까. 감자는 저온저장고에서 싹을 틔웠다. 몇 번이나 보라색 감자싹을 자르고, 이른 봄 땅에 묻었다. 하지가 돌아왔고 몇 포기가 싹을 밀어 올렸고 땅속 감자는 몇 알 여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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