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혼자 가는 먼 집
지은이 : 허수경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 / 산문집 『오늘의 착각』(난다, 2020) / 시해설집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난다, 2020)
지금까지 내가 잡은 시인 故 허수경(許秀卿, 1964-2018)의 책들이다. 그동안 평론집이나 시해설집을 펼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저자들이 언급했던 시인이었다. 그녀의 때이른 죽음에 송구스러웠을까. 나는 뒤늦게 군립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을 대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 번째로 잡은 책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고향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등단 이듬해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냈다.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1992년 늦가을 시인은 독일로 떠나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고고학을 공부했다.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시인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7편이 실렸다. 기자 박해현은 해설 「마음의 관능, 세간의 혼몽」에서, “그는 오직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 몸을 담고, 그것이 헛된 것이지만, 그 헛됨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106쪽)을 알았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시인을 이렇게 평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일은, 남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내가 잡은 시집은 초판32쇄로 2020. 9. 24.에 출간되었다. 시집은 2018. 11. 기준으로 제목과 본문에 쓰인 한자 표기를 대부분 한글로 옮겼다. 표제시 「혼자 가는 먼 집」은 2024년 설문조사에서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였다. 시인에게 詩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삶의 내용. 시인은 탄생과 탄생을 거듭하다가 어느날 폭발해버리는 존재”였다. 마지막은 「정든 병」(15쪽)의 전문이다.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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