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옛 그림으로 본 서울
지은이 : 최열
펴낸곳 : 혜화1117
군립도서관의 신간코너에서 미술평론가 최열(崔烈, 1956- )의 『옛 그림으로 본 조선 』 시리즈를 운 좋게 만났다. 4-5년 전에 앞서 펴낸 두 권의 책을 대여목록에 올렸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부터 펼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추천평을 올려 많은 이들이 찾은 책이었다. 부제가 ‘서울을 그린 거의 모든 그림’으로 서장과 1장-8장까지 열여덟 편의 글을 담았다.
미술평론가는 그동안 조선회화사부터 근현대미술사까지 한국미술사 전반을 시대와 분야, 구분 없이 광폭의 횡보를 보이며 연구 결과물을 상재해왔다. 20여 년 동안 서울의 옛 풍경을 그린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꾸준히 찾아 나선 노고가 빚어낸 역작이었다. 원고지 분량 약 2천매, 수록된 그림은 125점이었다. 16세기 작자 미상에서 19세기 심전 안중식까지 옛 그림이 집대성되었다.
19세기까지 한양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도성이었다. 책은 서울을 8개 권역으로 나누었다. 도봉에서 삼각산ㆍ백악을 거쳐 세검정을 지나 인왕산 그리고 서소문과 광화문, 창덕궁과 망우리, 남산과 한강의 광나루, 마지막은 행주산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서문 「한양의 기억은 서울의 미래다」에서 “한양은 그 지형과 풍수를 거르지 않은 자연의 도시였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한양은 한 폭의 산수화.”(6쪽)였다고 말했다.
서장―“서울, 햇볕 드는 큰 땅에 우리의 문명을 여노라”. 문장가 보한재 신숙주(1417-1475)는 『보한재집』에서 “한강 언덕에 우리의 문명을 열었다”고 천명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많은 한양 풍경 그림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장안연우長安烟雨〉 18세기. 표지그림은 북산 김수철(1820?-1888?)의 위는 산악, 아래는 도시를 배치한 구도로 그려낸 〈한양전경도〉 1850년.
1장―도봉에서 삼각산을 거쳐 백악에 이르다.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내려와 철원, 포천, 양주를 거쳐 서울을 향해 불쑥 치솟은 세 개의 봉우리 선인봉, 만장봉 그리고 자운봉. 도봉천 언덕에서 본 풍경을 그린 이인문의 〈도봉산 추경〉 18세기, 김석신의 〈도봉도〉 18세기. 도봉서원터에서 도봉사까지 올라가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 정선의 〈도봉추색도〉 18세기.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의 삼각산. 눈빛으로 환한 밤풍경의 긍재 김득신(1754-1822)의 〈삼각산 노적봉도〉 1800. 경복궁 뒷산 백악白岳. 백악산을 그린 다섯 명의 화가에서 가장 선배는 겸재 정선의 〈백악산 취미대〉, 〈백악 부아암〉 18세기. 상림원터를 짐작할 수 있는 정선의 〈취미대〉 18세기. 정선의 육상궁 북쪽 큰 바위를 그린 〈대은암〉 18세기 두 점. 퇴우당 김수흥(1626-1690)의 집 가까이 지은 만리뢰 계곡의 정자 〈독락정〉 1751년, 1755년에 그린 두 점. 청송 성수침(1493-1564)의 청송당터를 그린 정선의 〈청송당〉 18세기. 대은암 일대를 그린 정선의 〈은암동록 隱岩東麓〉 18세기.
2장―세검정에서 나오니 창의문에 곧 닿더라. 세검정은 ‘경도십영’의 하나 ‘장의심승藏義尋僧’은 예전 최고 명승지. 정선의 부채그림 내려다 본 〈세검정〉 18세기. 홍제천의 오간수문을 그린 정선의 〈홍지문 수문천석水門川石〉 18세기. 인왕산과 백악산사이 창의문 일대의 아름다움은 도성 제일. 창의문 남쪽 기슭을 그린 정선의 〈창의문〉 18세기. 백운동천의 시작 지점 정선의 〈백운동〉 18세기.
3장―청풍계의 벗, 인왕산 그림, 필운대 꽃놀이. 서로 다른 두 첩(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이 전해지는 1755년 무렵 자신을 후원하는 가문의 세거지 장동 일대를 그린 《장동팔경첩》. 정선이 그림 봄날과 여름날, 두 점의 〈청풍계〉. 오랜 벗들과 어울리던 옛 추억의 한 장면 정선의 〈괴단 야회도〉 1752. 안개 걷히는 인왕상을 그린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게 그린 담졸 강희언(1738-1784이전)의 〈인왕산도〉 18세기. 인경궁ㆍ자수궁 옛터를 그린 정선의 〈수성구지壽城舊址〉, 〈수성동水聲洞〉 18세기. 인왕산에서 경복궁으로 흐르는 시냇물줄기 〈옥류동玉流洞〉 18세기. 송석원 시사회를 그린 1791년의 《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 고송유수관 이인문(1745-1824이후)의 〈송석원 시회도〉, 김홍도의 〈송석원야연도松石園夜宴圖〉. 시화를 즐기는 선비들을 그린 정선의 〈필운대 상춘도〉 18세기.
4장―서대문을 지나면 서소문이 우뚝하고 광화문이 머지않네. 정선의 부채그림 〈소의문에서 도성을 보다〉 18세기. 심사정의 독립문 아래쪽 연못 반송지盤松池에서 바라 본 〈천연동 반송지〉 1768. 북일영 인근의 활터를 그린 김홍도의 〈북일영도北一營圖〉 18세기. 1729년 여름 어느날 의금부 관원모임 기록화 정선의 〈의금부〉 1729.
5장―창덕궁 지나 혜화문, 그 너머 망우리. 창덕궁 정문 돈화문 앞 대로를 그린 강희언의 〈북궐조무도北闕朝霧圖〉 18세기. 창덕궁 후원 규장각을 그린 김홍도의 〈규장각奎章閣〉 1776무렵. 19세기 궁중회화가 탄생시킨 최대의 걸작 〈동궐도〉. 혜화문의 문루가 사라진 정선의 〈동소문〉 18세기. 동대문에서 동관왕묘를 지나 멀리 아차산까지 바라본 정선의 〈동문조도東門祖道〉 1764년경.
6장―남산 위 저 소나무, 용산에 흐르는 역사. 남소영南小營은 어영청 소속 수도방위 예하부대. 남소영에서의 행사를 그린 김홍도의 〈남소영〉 18세기. 남산 서쪽 기슭에서 바라 본 한양 심사정의 〈남산에서〉 1768. 남산기슭 서쪽을 그린 표암 강세황의 부채그림 〈남산과 삼각산〉 18세기.
7장―한강을 따라 광나루에서 흑석나루까지. 교통과 물류, 군사가 교차하던 요충지. 광나루를 그린 정선의 〈광진〉 18세기. 여름날의 송파나루를 그린 〈송파진〉 18세기. 저자도에서 중랑천 건너편 입석포를 그린 김석신의 〈가고중류도笳鼓中流圖〉 18세기. 강기슭의 음탕한 뱃놀이를 그린 신윤복(1758-1839?)의 〈주유청강舟遊淸江〉 19세기. 배위에서 바라본 압구정과 일행을 그린 김석신의 〈압구청상狎鷗淸賞〉 18세기. 압구정과 강건너 중랑천, 살곶이 다리를 그린 정선의 〈압구정〉 18세기. 동빙고ㆍ서빙고는 관청에서 운영하는 관설 빙고. 서빙고 앞나루에서 열린 모임, 강세황의 〈서빙고〉 1784. 동작진은 한양에서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향하는 포구. 정선의 〈동작진〉 18세기. 금호에서 열린 선비들의 모임, 김석신의 〈금호완춘琴湖翫春〉 18세기.
8장―노량진 거쳐 행주산성, 한강은 흐른다. 정조때 배다리를 설치 강을 건넜던 노량진은 한강 3대 포구. 용산호라 부르던 한강 김석신의 〈담담장락澹澹張樂〉 18세기. 마포 남쪽의 조그만 섬 심사정의 〈밤섬〉 1768. 잠두봉 건너편 굉이를 닮아 굉이산이라 부르던 정선의 〈선유봉〉 18세기.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양천의 여덟 곳 승경을 묶은 《양천팔경첩》 18세기. 잠두봉, 선유봉아래 나룻배를 띄운 정선의 〈양화환도〉 1740. 〈양화진〉 18세기. 안양천이 한강에 흘러드는 염창천 옆 도당산 꼭대기의 정자, 정선의 〈이수정〉 18세기.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공암. 정선의 〈소요정逍遙亭〉 18세기. 심사정의 〈공암〉 1768. 질마재라 부르던 안현 봉우리를 한복판에 배치한 정선의 〈안현석봉〉 1740-1741. 행주나루의 고기잡이를 그린 정선의 〈행호관어杏湖觀漁〉 1740-1741.
미술평론가는 말했다. “독재정권의 관료들은 아름다움을 살필 눈이 없었다. 그들은 수수만년 이어온 이 땅의 자연을 무참하게 파괴해 버렸다. 오늘날 한강변의 아름다움은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고 그림 속 승경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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