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내 마음을 담은 집

대빈창 2025. 3. 27. 07:00

 

책이름 : 내 마음을 담은 집

지은이 : 서현

펴낸곳 : 효형출판

 

부제가 '작은 집의 건축학 개론'인 『내 마음을 담은 집』은 나에게 건축가 서현(徐顯, 1963- )의 다섯 번째 책이었다. 건축가가 설계한 작은집 3채의 건축과정을 소개했다. 세 채의 주택 공통점은 모두 작고 검소했다. 건축가가 지금까지 설계한 건물 중에서 가장 작은 집들이었다. 하지만 건축현장에서 벌어지는 작업원리나 시공 정신은 작고 사소한 집도 예외일수 없었다.

가장 검소한 풍요 〈문추헌文秋軒〉. 은퇴한 간호사는 악보 뒷면에 그린 건축도면을 한 번 봐줄 수 있느냐고 찾아왔다. 그녀는 친구와 충주 시골에 작은 땅을 구입했다. 집터 근처에 엄청 큰 추평楸坪저수지가 있는 한적하고 나른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건축비 5천만원, 15평. 벽에 두께가 없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 도면을 보고 건축가는 A4 복사용지에 평면스케치로 벽두께를 감안한 도면을 그렸다. 건축주는 네팔인들을 도우려고 네팔어를 배우고 자원봉사로 삶을 살아 온 간호사였다. 건축가는 자발적으로 작업팀을 꾸렸다. 작은 예산이었지만 건축주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천장이었다. 결로현상을 막으려면 비싼 기능성 유리를 써야했고, 예산초과였다. 건축주는 말했다. “닦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건축가는 지붕 슬래브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창을 냈다. 천장이 하늘을 담아야 한다면 벽창은 계절을 담았다.

가을빛의 향연 〈담류헌談流軒〉. 건축주는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 아들 둘을 위해 파주 심학산 남쪽 언덕의 민간 택지 개발 단지를 구입했다. 외부 마감재는 예쁘장한 신재료 큐블록이었고, 건물의 전면에 콘크리트로 된 큼직한 십자가 구조체를 만들었다. 건축주 부부의 독특한 무채색 미감은 부엌가구, 식탁, 마루 심지어 세면대까지 검은색이었다. 건축주가 제안했던 ‘빛의 향연’을 구현하려, 건축가는 거실 전면의 큐불록 여기저기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사판을 설치했다. 조용하지만 찬란한 향연이었다. 마당 격자의 한 칸을 차지하게 될 나무로, 건축가의 조언은 작은아들과 같은 키의 단풍나무였다. 단풍은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이야기하고, 막내가 자신의 마음을 나무에 투영하고 커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걸 꿈꾸는 집이고, 거기서 많은 이야기가 목적 없이 흐르기를 바라는 건축주의 생각이 당호로 표현되었다.

동그란 하늘의 계측 〈건원재乾圓齋〉. 은행원 출신의 건축주는 은퇴를 준비하며 공주 외곽에 땅을 마련했다. 자연 경사면을 다 절개해서 평면으로 썰어놓은 땅이었다. 희귀 경차經車 4대를 가진 주인을 위한 집은 1층은 주차공간으로 배치하고 2층의 중정中庭이 집의 가치를 쥐고 있었다. 거실과 중정의 시각적 연결로 통유리를 생각했으나 지나치게 무거워 설치가 어려웠다. 두 장으로 나눴으나 기밀성이 문제가 되어 철문으로 대체했다. 일상생활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중정의 오석烏石 물갈기 마감을 포기했다. 현관에 얇은 유리를 깔아 반사된 빛이 깨끗하게 떨어졌다. 건축주의 ‘세상에 나만 갖고 있는 가장 작은 것’을 위해 건축가가 건넨 선물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하늘을 가진 집이었다. 춘추분의 해는 중정 천장의 동그라미에 딱 들어맞았다. 매일 매 순간 모습을 바꾸는 하늘을 가진 집이었다.

책은 자신만의 공간에 마음을 담는 과정들. 도시를 떠난 이들의 마음을 담은, 따뜻하고 담백하고 온기 넘치고 서정적이었던 집 짓는 과정을 담은 인간적 기록이었다. 건축가는 말했다. “비싸게 짓는 것보다 싸게 짓는 게 훨씬 어렵다. 그리고 더 절실하다. 왜냐하면 대개 그들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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