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지은이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옮긴이 : 남진희
펴낸곳 : 버터북스
짓밟히고 수탈당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천착해 온 비판적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1940-2015)를 처음 만난 책이 『시간의 목소리』(후마니타스, 2011) 였다. 그후 나는 『포옹의 책』(예림기획, 2007),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2004),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책보세, 2010), 『축구, 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 2006)을 연이어 잡았다. 10여년을 넘어선 저쪽의 세월이었다.
신간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원제가 ‘날들의 아이들’, 또는 ‘시대의 아이들’을 뜻하는 『L0S HIJOS DE LOS DIAS』였다. 저자는 2007년 폐암 진단을 받고 ‘가장 보편적이고 지속가능한 인류의 캘린더’를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타계하기 3년 전에 책은 완성되었고, 그의 사후 9년 만에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빈곤 과정』으로 낯익은 문화인류학자 조문영의 추천사가 새롭다. “과거의 어느 시기, 지구 어느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생명으로 살기를 거부한 존재들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 시켰다. 세계사는 승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이야기였다. 저자는 서구의 시선을 걷어내고 약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다. 참혹한 약자의 역사에서, 갈레아노는 역사의 흐름 앞에 매몰되고 희생되는 것이 아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성은 일 년 365일, 2월 29일까지 366가지 이야기를 하루 한 쪽 분량으로, 달력 순서대로 엮었다. 날짜별로 그날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해설과 각주를 붙였다. ‘1월 1일 오늘’의 첫 문장은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그러나 마야인, 유대인, 아랍인, 중국인을 비롯해 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에게 그렇지 않다’로 시작되었다. 로마제국이 만들고 바티칸이 공인한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준달력 그레고리오력으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12월 31일 말의 여정’은 208년 의사·시인·도서관장이었던 세레누스 삼모니쿠스의 『비사』에 실린 열병(말라리아)의 치료법을 이야기했다.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외우는데, 그 의미는 “너의 불꽃을 세상 끝까지 퍼뜨려라”였다.
책을 읽다가 노트에 짧게 긁적인 이야기들이다. 1918년 혁명의 열기가 들끓던 모스크바에서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는 하느님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그는 기나긴 인간의 역사에서 인류에 반하는 수많은 죄를 지었다고 사형을 선고했다. 하늘을 향해 다섯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셰넌도어 국립공원 산림감시원 로이 설리번은 평생 일곱 번의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그의 별명은 ‘인간 피뢰침’이었다. 71세 나이에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민주정부는 1900년대부터 1960년까지 원주민 아이들 10만여명을 강제로 빼앗아 백인가정에 나눠주었다. 아이들을 가난과 범죄에서 구출하고, 야만적인 삶의 방식에서 분리한다는 명목이었다. 1940년 2월 29일 할리우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무려 여덟 개의 오스카상 트로피를 안겼다.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그린 영화였다. 1770년 영국법은 ‘속임수를 쓰는 여성들’을 처벌하기로 했다. 흉물스러운 여인들이 ‘향수, 화장, 목욕, 의치, 가발, 양털 충전재, 코르셋, 후프, 반지, 귀걸이, 하이힐 등의 속임수’를 써서 유혹, 결혼을 강제하기 때문이었다.
1932년 〈유인원 타잔〉이 개봉되었고 극장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올림픽 수영 5관왕의 타잔역 조니 와이즈뮬러는 아프리카에 가 본적이 없었다. 그의 울부짖는 하울링은 음향전문가가 고릴라, 하이에나, 낙타, 바이올린, 소프라노, 테너 등의 소리를 합성해 만든 작품이었다. 미연방수사국FBI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죽는 날까지 22년 동안 전화를 도청하고 편지를 몰래 검열하고 쓰레기통을 뒤졌다. 경찰에게 아인슈타인은 모스크바가 보낸 첩자였다.
1961년 4월 15일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상륙작전을 펼쳤다. 배와 항공 지원을 받은 일명 ‘피그 만 침공’은 상륙 사흘 만에 100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호르헤 비델라 정권은 진보인사·학생을 납치했고, 3만명이 실종되었다. 실종자 14명의 어머니들이 대통령 궁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목요일마다 시위를 이어갔다. 미국은 쿠데타 정권의 인권탄압을 묵인했다.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연을 권리와 주체로 인정하는 새 헌법을 제정했다. 자연은 존재 자체와 진화 과정의 유지, 재생을 존중받고 훼손시 원상회복될 권리를 갖게 되었다. 1901년 엘리사 산체스와 마르셀라 그라시아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엘리사는 서류, 사제, 용모, 목소리를 남성 마리오로 바꾸었다. 사실을 알고 교회는 신성모독죄로 두 사람을 고발했다. 최초의 ‘동성 결혼식’이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남아공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테러리스트 딱지를 붙였다. 2008년이 되어서야 미정부는 넬슨 만델라를 명단에서 지웠다.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은 히틀러가 가장 총애한 과학자로 V시리즈 로켓을 개발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달에 처음 인간의 흔적을 새긴 우주선을 만들고 발사했다. 14세기 광적인 수도원장들은 악마의 가축·사탄의 도구 고양이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제 세상을 만난 쥐들이 흑사병을 옮겼고 유럽인 3천만명이 죽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선거에서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의 대통령이 되었다. CIA의 사주를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국방장관의 쿠데타에 저항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콜롬비아에서 1880년 태어난 킨틴 라메는 원주민 인권운동가로 108번이나 감옥에 갔지만 불가사의하게도 1967년 늙어서 죽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차르를 반대하는 독서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 집행 바로 직전에 사면령이 떨어져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이 경험은 〈죄와 벌〉과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1973년 칠레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피노체트는 월드컵 예선을 국립경기장에서 열었다. 당시 경기장은 정치범 수용소이자 고문실이었다. 소련은 인권침해와 반인도적 행위에 반대하여 경기를 거부했다.
코스타리카의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는 혁명으로 집권한 후 대통령을 3선 역임했다. 그는 내전으로 피해가 심각해지자 군대를 폐지하고, 여성과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코스타리카는 전쟁과 쿠데타에서 해방되었다. 포루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는 실명뿐만 아니라 대략 75가지 이름으로 글을 발표했다. 그는 ‘필명’이 아닌 ‘이명’이라고 했다. 이명들은 기질, 철학, 외모, 문체 그리고 서명까지 모두 달랐다. 그들 중 몇 명은 그를 비판하는 신랄한 비평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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