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생물성

대빈창 2025. 3. 31. 07:00

 

책이름 : 생물성

지은이 : 신해욱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간결한 배치』(민음사, 2005) / 『생물성』(문학과지성사, 2009) / 『Syzygy』(문학과지성사, 2014) / 『무족영원』(문학과지성사, 2019) /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봄날의책, 2024)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시인 신해욱(1974- )이 지금까지 펴낸 시집들이다. 나는 뒤늦게 네 번째 시집 『무족영원』을 만났고, 시집들을 연이어 잡을 생각이었다. 내가 뿌리내린 삶터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으로, 군립·작은도서관에 시인의 시집 세권이 비치되어 있었다.

시인은 그동안 고독과 절망에 빠진 현대인의 자화상을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그렸다고 평가받았다. 두 번째 시집은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서 진자처럼 흔들리는 현대인의 초상, 시인은 그 흔들리는 초상을 응시”했다고 한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의 詩 이해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한권 남은 시집의 대여를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극단의 언어실험과 파괴의 미학을 선보이는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을 만나기에, 나의 단순성(?)은 거대한 절벽이었다.

담담한 고백체와 간명하고도 평이한 일상어로 직조된 시집은 1·2부에 나뉘어 51편이 실렸다. 시인 김소연은 발문 「헬륨 풍선처럼 떠오르는 시점과 시제」에서 말했다. “신해욱의 시는 늦게 온다. 연과 연 사이가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 아득한 틈을 우리는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마지막은 2024년 현역 시인들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에 뽑힌 「보고 싶은 친구에게」(30-31쪽)의 전문이다.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 너만 좋다면 / 내 목소리로 / 녹음을 해도 된단다. //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 너라면 충분히 /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 안녕. 친구. /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 난 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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