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대빈창 2011. 7. 14. 03:21

 

 

 

책이름 :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지은이 : 박상진

펴낸곳 : 왕의 서재

 

나는 '나무와 숲'에 관한 책을 십여권 갖고 있다. 십여년 전 우연히 산림학자 전영우의 학고재에서 간행한 '나무와 숲이 있었네'라는 책을 잡은 이후, 나무 칼럼리스트 고규홍의 책을 비롯한 인문교양 서적으로서의 산림관련 책들이다. 저자와 책으로는 처음 만났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귀동냥으로 목재로 만들어진 우리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로 알고 있다.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장소가 강화도가 아닌 남해안인 것은 사용된 목재에 후박나무와 거제수나무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학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저자는 백제 무녕왕릉의 목관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문화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저자의 책을 처음 잡았지만 나무와 숲에 대한 친절한 인문학적 글쓰기가 독자의 시선을 오래 사로 잡았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재청이 지정하고 관리하는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이 250여 곳에 달한다. 그중 지은이는 가치가 높은 '역사현장의 나무' 14곳, '문화유적의 나무' 18곳, '전통사찰의 나무' 24곳, '선비와 장군의 나무' 17곳으로, 총 73곳을 찾았다. 14년 여에 걸친 답사와 조사로 귀중한 사진과 함께 나무와 숲에 얽힌 이야기는,  한번 손에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와 함께 마구잡이 새마을 운동의 낫질을 용케 피한 원주 성황림, 예천 금당실 솔숲, 울릉도 퉁구미 향나무 자생지,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숲, 부산 범어사 등나무숲, 대구 서거정 측백나무숲,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숲, 강진 백련사와 고창 선운사의 동백나무숲이 의연히 존재를 드러내 독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이국적 정취의 보물섬 제주도의 납읍, 안덕계곡, 천지연의 난대림과 산천단의 곰솔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자생하지 못해 중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백송(白松)은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때는 모두 12그루였는데, 지금은 5그루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헌법재판소, 조계사, 예산 추사 김정희 백송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백성을 어진 마음으로 돌본 목민관의 사랑이 일궈낸 함양 상림, 하동 송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솔숲, 담양 이도령 관방제림이었다. 비만 오면 강변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고운 최치원이 조림한 함양 상림이 대표적이다. 토건족 그들만의 잔치를 위한 일명 '4대강 사업'은 포클레인 삽날의 무자비하고 끝없는 린치에 다름아니다. 고통에 못이겨 울부짖는 이 땅의 신음에 오늘도 귀를 막을 수밖에 없는 괴로운 현실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의 천연기념물은 모두 4그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천연기념물 78호 강화 갑곳리 탱자나무. 그리고 79호 사기리 탱자나무, 304호인 볼음도 은행나무 그리고 막내인 502호 마니산 참성단 소사나무가 주인공들이다. 탱자나무 2그루는 언제 누가 심었는 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조선 숙종때 강화도 전역을 둘러 싸는 돈대를 설치하면서 심었을 것으로 추측하면 수령은 330년이 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탱자나무의 북쪽한계선으로서 생육상의 지리학적 의미가 컸지만, 지구온난화로 이제 그 학설도 접어야만 된다. 북한 개성과 강원 양양에도 탱자나무가 자라기 때문이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은행나무에는 거시기가 달렸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막내 천연기념물인 소사나무는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니산 참성단은 해발 469m로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소사나무가 없으면 참성단은 얼마나 허전했을까.  참성단 지킴이로서 소사나무는 150년이라는 모진 풍파를 바람막이 하나없는 참성단 정상에서 홀로 이겨냈다.

나는 이 책을 잡고서 2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은 매년 2 ~ 3건씩 추가 지정됐으나, '82년 11월 4일 정통성 없는 신군부는 53건을 한꺼번에 지정했다. 160건의 노거수 중 무려 1/4이 넘는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홧발들이 말 못하는 나무들에게 팍팍 인심을 쓴 것이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은 나라에서 고유번호를 지정받아, 나무가 죽으면 번호는 결번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 땅의 노거수들은 하나같이 '외과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중이다. 즉 썩은 부분을 싹싹 긁어내고 우레탄으로 충전한다. 하지만 노거수 공동 메워주기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어 외국에서는 시행되지 않는다. 나무의 상처는 자연치유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0) 2011.07.20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0) 2011.07.18
택리지  (0) 2011.07.11
눈먼 자들의 도시  (0) 2011.06.30
녹색평론선집 3  (0) 201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