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택리지
지은이 : 이중환
옮긴이 : 이익성
펴낸곳 : 을유문화사
15여년만에 택리지를 다시 잡았다. 내 책장에는 용케도 1997년 한국과학문화재단이 편찬하고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가 꽂혀 있다. 분명 강화읍내의 단골 책방에 들렀다가 구입한 것이 틀림없다. 그때만해도 인터넷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책을 구입할려면 대여섯권씩 적힌 메모지를 책방 주인네에게 건네 주었고, 일주일에 한번 서울에서 배달되었던 책을 기다렸다. 시골소읍의 책방이 그렇듯이 책방에는 중고등학생의 참고서가 진열대를 차지했고, 그나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이 신간서적란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땅의 보통사람들은 누구나 '택리지'라는 책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서점 한구석에 꽂힌 이 책을 빼 들었던 것이다.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팔도총론' 부분을 설명하면서 옛지도, 사진, 그림, 글씨를 첨가했다. 이후 '한국의 자생풍수'를 내세우는 최창조 교수의 책들을 즐겨 들썩였다.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한국의 풍수지리', '땅의 눈물 땅의 희망' 등. 그리고 얼마전 주민자치센터에 대출용 책들이 들어 왔는데, 을유문화사가 출판한 이 책이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뜨였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 ~ 1752?)의 호는 청담(淸潭) 또는 청화산인(靑華山人)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경종3년(1723)의 이른바 '목호룡 고변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사형이 아닌 유배형에 처해진다. 36세에 먼 섬에 유배되었고, 풀려나자마자 사헌부의 탄핵으로 다시 귀양길에 올랐다. 그후 귀양에서 풀려나 전국 방랑길에 올랐는데, 그것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은 어디인가를 찾는 여정이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으로 '擇里志'는 논어의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에서 따온 말이다. 즉 '마을 사람들이 같이 어우러져 사람답게 사는 것이 참 보기 좋으니 그런 마을을 택해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책은 서문,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 총론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살만한 터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복거총론을 참고해야 한다. 무릇 살터를 잡는데에 있어서는 地理(땅·산·강·바다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치)가 좋아야 하고, 다음 生理(그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人心이 좋아야 하며,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가지 중에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땅에서 기름진 땅으로 전라도는 남원과 구례, 경상도는 상주와 진주를 첫째로 손꼽았다. 책에는 5개의 발문이 실렸는데, 그중 河水 丁若鏞의 글이 눈길을 끈다. 실학자로서의 면모가 그대 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열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논한다면 물과 불을 먼저 살펴보고, 다음이 오곡이고, 그 다음은 풍속이며, 또 다음은 산천경지가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씌여 진 최초의 지리서로서 농경시대 사대부의 필독서였다. 하지만 이 땅은 전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근대화, 산업화의 압축성장이라는 빵빠레를 울렸다. 이 땅의 도시화율은 80%를 넘어섰다. 전 국토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살 터를 찾으면서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살 터는 커녕 자기집도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전세, 월세를 찾아 다녀야 하는 하는 가구수는 10가구 중 4가구나 된다. 그렇다고 주택이 모자르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주택보급율은 101.9%나 된다. '사유재산 절대주의' 국가인 이 땅에서는 한 사람이 1,000여 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있어도 산동네 주민들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용역깡패의 몽둥이 찜질에 삶터를 빼앗긴다. 그렇다. 이 땅은 민주주의 국가인 것이다. 갖은 자들만을 위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이 땅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에만 해당된다. 소수의 그들만이 명당을 고르고, 조상의 묏자리를 고르고 이장한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명당이란 다름아닌 자고나면 땅값이 뛰는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청담은 복거 중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산수를 가장 뒤에 두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마땅치 않다. 모든 산은 터널로 관통됐고, 모든 강은 콘큰리트 직강화 공사중이다. 배산임수는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낙도오지와 두메산골 밖에 안 남았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다름아닌 농촌을 착취, 수탈하는 삶에 다름아닌 것이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도시의 삶은 지리, 생리, 인심, 산수가 아예 불가능하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0) | 2011.07.18 |
---|---|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0) | 2011.07.14 |
눈먼 자들의 도시 (0) | 2011.06.30 |
녹색평론선집 3 (0) | 2011.06.23 |
말똥 한 덩이 (0) | 2011.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