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대빈창 2025. 8. 14. 07:00

 

책이름 :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가 『정직한 관객』(학고재, 1996)이후 30여년 만에 펴낸 산문집이었다. 나는 저자의 마니아답게 첫 저서 『80年代 美術의 現場과 作家들』(열화당, 1987)부터, 옮긴 책까지 책장 한칸 반을 빼곡하게 차지했다. 부제 ‘유홍준 잡문집’은 중국 대문호 루쉰을 염두에 두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했지만, 시대적 고민과 담론을 담아냈다. 저자에게 루쉰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책은 5개장에 나누어 시대와 예술과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담았다. 1장 ‘인생만사’ 7편은 저자의 삶에서 시선이 한참 머물렀던 자리를 회상했다. 1994년 담배를 끊었다가, 1997년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백두산 천지에서 북한 안내원이 ‘백두산’ 담배를 권하는 바람에 다시 피게 되었다. 다시 금연하게 된 것은 서럽고 처량하고 치사해서였다. 금연의 첩경은 매정하게 결별하는 의지밖에 없다. 강원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30여년 전부터 잡초농법으로 무농약 농산물을 생산해온 생태농장 노부부(이해극, 윤금순)가 2019년에 세운 〈잡초공적비〉. 1988년 나이 35세에 세계바둑 역사상 여성 최초로 입신(入神, 9단)에 오른 철녀鐵女 루이나이웨이(芮乃偉)를, 한국기원은 1999년 객원기사로 초청하여 한국여성 바둑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가하여 겪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 6·25동란중 폐허속에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찾아 낸 것을 생애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던 통문관 옛 주인 이겸로(1909-2006) 선생. 미수연米壽宴에서 해방전후와 6·25동란 중에 겼었던 고난의 삶을 말씀하신 어머니.

2장 ‘문화의 창’ 9편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터치 미 뮤지엄’을 가능케 하는 포스코에서 개발한 포스아트PosART는 철판요철 프린팅. 우측통행·우측보행 체제에 대한 입장 표명. 현재 국내외에 약 30여점이 전해지는 조선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백자 달항아리. 너무도 흔하고 친숙하여 지나쳐왔던 누정의 미학.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25대 472년의 기록으로 총 1,847권의 888책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유물·유적은 100년 이상의 수령이 필요조건. 정부조직에서 부部는 나라의 정책을 맡고, 청廳은 현장의 실무를 담당.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모여 초서를 공부하는 모임 〈말일파초회〉. 중간고사 대신 내준 과제물 허수아비 만들기는 설치미술의 축제.

3장 ‘답사 여적餘滴’ 4편은 북한·중국·일본 문화유산 답사의 후기를 다루었다. 이틀을 묵었던 베개봉려관의 감자요리를 다 먹겠다고 하자, 접대원이 “그건 욕망이외다”라고 말한 것은 여든두 가지의 감자요리. 홍대용이 나이 35세에 동지사冬至使 서장관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경에 갔다가 만난 엄성과 반정균이 천애지기天涯知己의 시작. 2002 한일월드컵 일본조직위원장 오카노 슌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의 사무실은 우리나라 붕어빵 비슷한 ‘타이야키’라는 도미빵가게 2층에 있는, 그는 100년전부터 내려오는 점포의 4대 당주.

4장 ‘예술가와 함께’ 5편은 예술가의 작품세계와 당대 현실과의 관계, 저자와의 교류를 담았다. 개인자격으로라도 참석하기 위해 4일간의 휴가를 내고 뉴욕으로 떠났던 백남준(1932-2006)의 장례식. 서울시경 대공과가 북한 찬양 그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 기소한 100호 크기의 대작 〈모내기〉의 신학철(1943- ). 울음도 없고 슬픔도 없이 때로는 익살로 때로는 신명으로 민중적 삶이 한껏 고양된 나이 40세에 세상을 떠난 오윤(1946-1986). 민족문화 운동의 선구자로 민족예술 1세대를 길러낸 김지하(1941-2022). 우리나라 근대서예사의 대가로 임시정부의 고문이었던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

5장 ‘스승과 벗’ 7편은 우리 사회의 각별하고 소중했던 분들의 삶의 정수를 회고한 글을 모았다. 현저동 서대문구치소 앞에서 민청학련 사건(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구속된 공범들의 출소를 기다리다 첫 만남의, 주례를 봐 주신 리영희(1929-2010) 선생. 평생을 민족통일·반독재·노동해방 운동에 앞장선 민주투사 백기완(1932-2021) 선생. 맑은 영혼을 갖고 사신, 결이 고운, 마음이 따뜻한 신영복(1941-2016) 선생. 춤은 몸의 언어이자 시대의 언어 이애주(1947-2021) 선생. 지난 반세기 민주화운동에서 대체 불가능한 넉넉한 품으로 주변을 껴안은 박형선(1952-2022) 선생.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20년 만에 귀국한,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었던 홍세화(1947-2024) 선생. 노래가 철학적 사색과 시대적 고민을 담는 지성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모범적으로 보여 준 김민기(1951-2024) 선생.

부록 ‘나의 글쓰기’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제언’. 유년기 시절부터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 ‘조선 3대 구라’로 등극하게 된 1987년 『실천문학』 주관 남도답사길. 그밖의 자료로 감옥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대학3년때 제출한 시험답안지, 영등포교도소 복역할 때 김지하 시인이 옥중에서 지도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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