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용악 시집 두 권

대빈창 2025. 9. 5. 07:00

책이름 : 낡은 집·오랑캐꽃

지은이 : 이용악

펴낸곳 : 열린책들

 

날로 밤으로 /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 대대손손에 물려줄 /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 모두 없어진 지 오랜 /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냄새 그윽하다만 /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 (······) //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 이웃 늙은이들은 /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 탐스럽게 열던 살구 /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기에 / 꽃 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 「낡은 집」(53-56쪽)의 1·2·7·8·9연이다. 이웃에 살다가 어느날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북쪽으로 떠나버린 털보네 가족을 이야기했다. 시집 『낡은 집』은 ‘식민지 현실의 피폐한 실상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시인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은 북방의 국경도시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경성농업학교를 다니다 중퇴했다. 1932년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과 막노동을 병행했다. 1936년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 입학했다. 유학시절 내내 부두와 공사장 등지에서 품팔이 노동자로 일하며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1935년 『신인문학』 3월호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7년 첫 시집 『분수령』, 1938년 15편의 시가 실린 두 번째 시집 『낡은 집』을 《삼문사》에서 발행했다. 1947년 29편의 시가 실린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에서 발행했다. 해방정국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1950년 월북했고 1971년 쉰여덟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용악은 ‘자신의 체험과 내면 정서를 긴밀하게 결합하여 현실을 포착하려는 시적 경향을 지속시키면서 개성을 확보’했다. 『낡은 집』은 ‘삶의 피폐와 절망이 서정성과 결합하여 절실하면서도 격조있는 비애로 승화’(65쪽)시켰다. 『오랑캐꽃』은 ‘가혹한 역사의 변두리에서 이유없이 설움과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하는 왜소한 존재 일반을 표상’(69-70쪽)했다. 마지막은 표제시 「오랑캐꽃」(9쪽)의 전문이다.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린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 너는 오랑캐꽃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 오랑캐꽃 // 너는 돌가마도 털미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께 /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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