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매듭법
지은이 : 채길우
펴낸곳 : 문학동네
시인 채길우蔡佶佑는 2013년 문학계간지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나는 20세기 마지막 해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했다. 그해 시부문 당선자는 이안이었고, 소설 부분은 당선작이 없었다. 소설부분 심사위원은 현기영이었다. 나의 문청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날까지 작가 현기영의 소설을 즐겨 잡고 있다.
낯선 시인을 만난 것은 가장 외진 군립도서관 분점이었다. 나는 책을 대여할 때마다 시집 한권을 포함시켰다. 가장 발걸음이 뜸했던 도서관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시집을 대여목록에 올렸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측광』(창비, 2023)이었다. 시집의 표제를 단 詩를, 아니 구절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자유」(92-93쪽) 1연 4행의 ‘기울어진 햇살만큼 반짝여’가 내가 찾아 낸 ‘측광’이었다.
활자중독자답게 군립도서관을 찾는 나의 발걸음은 주기적이었다. 《지혜의숲》도서관 시집코너에서 메모해 간 시집을 찾고 있었다. 어깨를 맞춘 수많은 시집에서 표제가 눈에 들어왔다. 채길우 시인의 첫 시집을 뽑았다. 등단 7년 만에 펴낸 첫 시집은 2부에 나뉘어 47편이 실렸다. 시집은 표사·발문·해설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시집처럼 표제를 단 詩는 없었다. 마지막 시 「자전」(106-110쪽)의 4연에서 ‘흉터가 생기는 바깥을 동경해 작고 몽글어진 꼭지를 움직여 매듭을 만드는 연습, 목젖이 짓는 문장은 이렇다,’를 찾아냈다.
물가 듬성한 수풀 틈에서 날개 다친 새를 만났다 / 다리를 절룩이고 바닥을 기어가며 자주 이쪽을 돌아보았다 / 가만히 따라가지 않자 새가 나를 향해 웃었다 / 둥지와 새끼가 근처인가 / 마주친 시선을 황급히 내리깔고 / 어두운 땅굴 속을 파고들 때 / 불빛 비친 유리로 흩어진 깃털과 물결이 떠올라 / 휩쓸리는 수면 위에 갇힌 나를 밝혀놓는데 / 졸린 듯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면 / 이미 날아가고 없는 빈 체온만 젖어 남아 있을지 / 흔들리는 물소리가 철컹철컹 흘러가는 동안에도 / 속은 것인지 모른 척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지하철의 앉은뱅이」(30쪽)의 전문이다. 시인은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보았다. 앉은뱅이가 날개를 다친 새처럼 느껴졌다. 장애인과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졸린 시늉을 할까 고민할 뿐이다. 내가 지하철을 탄 시절이 언제이었던가. 구석진 의자에 앉아있었다. 엉덩이를 끄는 장애인과 점차 거리가 좁혀졌다. 손은 호주머니 속 천원지폐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지나갈 때까지 조는 시늉을 할까하는 마음이 일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기 전에 쓰는 글들 (0) | 2025.10.23 |
|---|---|
| 물질의 탐구 (0) | 2025.10.22 |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0) | 2025.10.20 |
| 명화의 탄생―그때 그 사람 (1) | 2025.10.17 |
|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0) | 2025.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