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다산茶山의 일기장日記帳

대빈창 2025. 10. 27. 07:00

 

책이름 : 다산의 일기장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김영사

 

나의 독서이력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한 파워라이터는 고전인문학자 정민(鄭珉, 1961 - )이었다. 그의 한문학 문헌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린 책들에 나는 깊이 빨려 들어갔다. 신간이 출간되면 여지없이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고, 책을 빌려 섬으로 돌아왔다. 700여 쪽에 가까운 양장본 『다산茶山의 일기장日記帳』은 나에게 서른세권 째 책이었다.

1795년 7월부터 1797년 윤6월까지 다산이 33-35세였을 때의 기록이었다. 젊은 다산이 이가환, 이승훈과 함께 천주교와 관련된 ‘사학삼흉邪學三凶’으로 몰려 지방으로 좌천되고, 약 2년 간 작성한 〈금정일록金井日錄〉, 〈죽란일기竹欄日記〉, 〈규영일기奎瀛日記〉, 〈함주일록含珠日錄〉에 주석을 붙여 해설한 책이었다. 4종의 일기는 다산의 문집에 실리지 않았지만 1974년 동양철학자 김영호가 펴낸 『여유당전서보유』에 그 내용이 담겼다.

고전인문학자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백문백답의 형식으로 다산이 일기 속에 감춰 둔 행간과 맥락에 주목했다. 일기와 함께 『다산시문집』의 편지·시문, 『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그리고 각종 상소문, 척사 기록, 족보 등을 종합 검토하여 다산과 그 시대가 감춘 진실을 쫓았다.

〈금정일록〉은 다산 33세, 1795년 5월 조정이 주문모周文謨 신부 검거에 실패하면서, 이 일과 관련하여 다산이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던 5개월간의 기록이었다. 다산은 목숨을 걸고 주문모 신부를 피신시키고 좌천된 후 천주교 탄압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정조(재위 1776-1800)가 자신을 사학의 굴레에서 벗겨주려는 마음을 받아들였다. 다산은 1795년 7월 26일 금정 찰방으로 좌천되어 내려왔다가 5개월이 지난 12월 25일에 서울 명례방 본가로 돌아왔다.

〈죽란일기〉는 〈금정일록〉의 부록으로 금정에서 상경한 뒤 1796년의 실직 상태 명례방 시절의 일기였다. 1796년 1월 17일부터 3월 30일까지의 기록으로 한양으로 복귀한 다산이 바라본 조정 풍경에 대한 스케치였다.

〈규영일기〉는 규영부 교서관으로 복귀했을 때의 1796년 11월 16일과 17일 양일간의 짤막한 기록이었다. 명례방으로 돌아온 다산은, 그 1년이 지난 1796년 11월에 규장각 교서관으로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함주일록〉은 1797년 6월 회심의 〈변방소辨謗疏〉 제출 이후 끝내 비난 여론을 잠재우지 못해 외직 곡산부사로 밀려나기 전까지 쓴 기록이었다. 함주含珠는 ‘구슬을 입에 머금고 있다’는 의미였다. 동부승지를 제수받은 날부터 시작해서 곡산부사로 떠나기 직전인 윤6월초 6일까지에 걸쳐 쓴 보름간의 기록이었다.

젊은 날의 다산에게 천주교는 양날의 검이었다. 전향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서도 그의 진실성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일기는 안간힘의 결과를 밝힌 것으로 모순덩어리였다. 다산의 일기는 자신이 혐오하고 경멸하던 자들에게 자신의 진성을 믿어달라고 쓴 기록이었다. 〈서암강학기〉와 〈도산사숙록〉는 당시 절박했던 다산이 사학을 버리고 정학으로 돌아왔다는 공인절차였다.

다산은 금정에서 복귀한 뒤에도 천주교 지도자 이존창의 검거를, 복귀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정조의 뜻을 거역하였다. 오랜 침체 후에 〈변방소〉 제출이라는 강수를 두었으나 곡산부사로 중앙을 떠나 있어야만 했다. ‘천주교와 관련된 다산의 말과 행동에는 모순적 양가감정이 병존한다. 그는 신앙을 버렸지만 완전히 떠나지 못했고, 임금을 사랑했지만 천주도 사랑했다.’(26쪽)

고전인문학자가 바라본 조선 최고의 실학자·개혁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젊은 시절은 돌격대장이었고 다혈질로 수틀리면 들이받았다. “다산의 엇갈리는 갈지 자之 행보는 우유부단함에 대한 징표가 아니라 서학이라는 거대한 체계와 대면한 18세기 조선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젊은 날 다산의 강파르고 직선적인 성정과 다산이 스스로 검열하고 은폐한 행간을 찾아냈고 복원시켰다. 마지막은 「장차 곡산으로 가면서 궁궐을 떠나던 날, 서글퍼서 짓다將赴谷山辭殿日, 悵然有作」(515쪽)의 전문이다.

 

靑靴颯沓下螭頭    푸른 신발 머뭇대며 대궐 계단 내려설 때               

天語諄諄涕自流    살뜰하신 님의 말씀 눈물이 절로 난다.                  

不是滕生求浙郡    등생滕生처럼 절군浙郡 나감 구한 것이 아니요    

 還如蘇頌赴滄州   소송蘇頌이 창주滄州에 부임함과 똑같다네.       

奎垣縹帙隨行李    규장각의 비단 책갑 행장을 따라오고                   

內局金丸慰別愁    내의국의 금빛 환약 이별 근심 달래준다.              

西出石關三百里    청석관 서쪽 나서 300리를 더 가면                      

一秋霜月夢瓊樓   가으내 서리 달에 님 계신곳 꿈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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