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누가 말을 죽였을까
지은이 : 이시백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표지 그림은 한 농촌마을을 위에서 내려다 본 정경이다. 2층 건물의 아래층은 슈퍼이고, 윗층은 살림채로 보인다. 나무평상과 조잡한 플라스틱 간이의자와 그늘막, 아이스크림통과 둥그런 유선TV 안테나도 달렸다. 새마을 운동으로 전통가옥을 쓸어버리고, 국적불명의 울긋불긋한 색칠로 도배질한 양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한 구석에 교회 첨탑도 보인다. 전봇대를 등진 비닐하우스와 논에 빠진 자가용과 공터의 경운기 그리고 논 가운데 오리 한 마리가 먼산바라기를 한다. 친환경농법으로 제초작업을 하라고 풀어 놓은 값비싼 오리다. 마을을 향해 누군가가 급하게 경운기를 몰고 있다. 분명 충청도 음정면의 한 농촌마을일 것이다. 이 연작소설집에는 11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사투리로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충청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은 음정면의 십오개 리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소설집은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 온 재규씨와 그의 아들 종필, 고엽제전우회 회장 최건출과 사무국장 전충국, 새마을지도자 우칠이, 두꺼비 펜션주인 말석씨, 시골로 이사 온 환경운동가 최을축 선생, 새끼야 슈퍼의 주인 평식이, 방골의 영배 할배, 소적리 데모쟁이 달수, 희망부동산의 구본중 이장 등 음정면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이야기다. ‘땅 두더지’는 홈쇼핑 광고의 꽃무늬 빤스에 혹한 재규씨 안사람. ‘조우(遭遇)’는 아들 종필의 FTA, 농협야구단 창단 결사반대 집회. ‘복(伏)’은 월남파병 고엽제전우회와 해병전우회의 공짜 컨테이너 쟁탈 드잡이질. ‘개값’은 고엽제전우회 사무국장 전충국이 살아오면서 겪은 개에 대한 악몽.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시골마을 어느 한 구석에나 있는 말무덤 발굴기. ‘없을 무 암것두 암’은 무암리 노랭이 말석씨의 돈 집착의 숨은 내력. ‘천렵(川獵)’은 최선생의 생태마을 조성기. ‘새끼야 슈퍼'는 슈퍼주인 평식의 카드도박 중독과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학대. ’방골 골프장 저지 투쟁 위원회‘와 ’소적리 데모쟁이‘는 골프장 건설과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기.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는 눈먼 도시자본에 놀아나는 농촌의 땅투기와 퇴폐적 음주문화 등. 작가는 냉정한 시선으로 도시 사람들의 허위적 생태의식과 초토화된 농촌공동체를 그려냈다.
이 소설집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권정생창작기금’의 2010년 제1회 수상작이다. 권정생 이름 석자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황혼기 자본주의의 막가파식 소비문화에 중독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지구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소농을 제외하고는. 하긴 노동을 하면 할수록 빛덩이만 늘어가는 농촌 살림살이에서 과소비를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다. 나는 저자가 권정생 창작기금의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속으로 크게 박수를 쳤다. 권정생 선생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을 쓰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수상소감은 이렇다. ‘상이 아니라 벌을 받은 것 같다. 이제 내 인생에서 권정생이라는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었는데 정신차리고 살라고 주신 상으로 알고 받겠다. 그리고 꽃보다 똥이 되도록 힘쓰겠다.’ 작가는 전업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단에서 과감하게 내려와 남양주 광대울에서 산중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이 소설을 잡고 이문구의 ‘우리동네’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시름 쓸어내렸다. 이 땅에서 농촌소설의 맥이 끊긴 것을 염려했는데, 저자는 이야기꾼으로서 입심 센 농민의 입장에서 농민적 정서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궁벽해지고 각박해지는 농촌현실을 신랄한 풍자로 그려내는 작가의 역량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작가의 신작소설집 ‘갈보 콩’은 맛있는 과자를 아껴먹는 아이의 심정으로 책장에 고이 모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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