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대빈창 2011. 7. 28. 10:48

 

 

 

책이름 :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지은이 : 이현주

펴낸곳 : 작은 것이 아름답다

 

법정, 도법, 수경 스님과 문규현, 문정현 신부님과 홍근수, 이해동 그리고 이현주 목사님이 언뜻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사표로서의 종교인들이다. 이 분들의 삶은 이 땅의 약자들에게 따듯한 시선을 항상 고정시키고 계셨거나 계신다. 후원회원으로서 격월간으로 받아보는 녹색평론에서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출간소식을 가끔 눈동냥하곤 했다. 책은 월간지 『작아가 창간 14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펴낸 단행본으로 100% 재생종이를 사용했다. 내용은 44명 아이들의 솔직한 물음에 이현주 목사가 일일이 쓴 손글씨 편지가 나·너·우리 3부에 나뉘어 실렸다.

목사는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로 자기 말만 늘어놓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몰라서이고, 네가 남에게서 바라는 것을 남에게 먼저 하고, 네가 남에게 당하기 싫은 짓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예수와 공자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인간의 역사’란 지금 어른들이 일제 때 어른들이 남겨놓은 문제를 끌어안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자랐듯이, 너희는 지금 어른들이 빚어놓은 문제들을 안고 씨름하면서 다음 세대의 어른으로 자라난다고 답했다. 그렇다. 내가 위에 열거한 분들은 시대의 사표로서 존경받는 분들이었다. 일제 식민지와 극우 독재, 4·3항쟁, 남북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서글픈 현대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혜로운 멘토로서 어른들을 대하기 힘들었다.

이현주 목사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발언으로 교단에서 파문을 당한 스승 故 변선환(1927~1995) 박사를 따라 현재 야인으로 살고 있다. 지금은 충주의 한 쇠락한 농가를 집필실 삼으면서, 초기 기독교의 모습으로 ‘건물없는 교회’를 실험하고 있다. 즉 전국을 찾아다니며 산이나 들에서 뜻맞는 사람들과 예배를 드렸다. 예수를 앞세워 죽음을 파는 쇼핑몰로 전락한 이 땅의 극우보수 교회에서 올곧은 목사는 이단(?)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의 공동저자가 생태 잡지에서 펴낸 첫 단행본을 손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작은 포켓용 책을 내면서 출판사는 56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다만 할머니가 여든여덟까지 장수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자상하고 훈훈한 정을 느끼지 못했다. 어릴적을 회상하면 가난이 뼈속까지 스민 서러움만 떠올랐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도 생계에 목을 매단 가난한 살림으로, 책의 저자처럼 손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할 수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어릴 적 우리집은 자연부락 ‘한들고개’가 말하듯 언덕 꼭대기에서 살았다. 부엌의 바람벽이 무너져 멍석으로 대충 가렸고, 어머니는 바람에 날린 벌건 황토가 묻은 사기그릇을 매일 닦아야 했다. 봄 모내기부터 가을걷이까지 부모님은 논과 밭에서 사셨다.

농한기 겨울철에도 쉴 수가 없었다. 가마니나 새끼를 꼬아 가욋돈을 벌어야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해였다. 그날도 삭풍이 허술한 바람벽을 제 마음대로 드나드는 봉당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가 가마니를 짜고 계셨다. 자식없이 늙어가던 아랫집 할머니가 마실을 오셨고, 어린 나를 장난삼아 구슬렸다.

 

"세발자전거 사줄께. 나와 같이 살래."

"네. 좋아요."

 

어린 나의 입에서 곧바로 터져 나온 대답이었다. 대바늘 코에 짚을 꿰시던 어머니와 바디를 내려 치시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만약 그때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세발자전거가 탐이 났던 어린 손자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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