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조동관 약전略傳

대빈창 2026. 1. 15. 07:30

 

책이름 : 조동관 약전略傳

지은이 : 성석제

펴낸곳 : 강

 

20여년 전 손에 넣은 작가 성석제(成碩濟, 1960- )의 소설집 4권, 엽편葉篇소설 2권에서 네 번째로 손에 펼친 책이다. 내가 잡은 『조동관 약전略傳』은 2003년 초판본으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 1997)의 개정판이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의 소설들은 재치, 익살, 역설, 풍자, 해학, 웃음 등이 수식어로 붙어 다녔다. 소설집은 단편소설 9편으로 구성되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해설 「서사는 가끔 탈주를 꿈꾼다」에서 “성석제는 이른바 ‘본격문학’과 주류적인 서사의 주변주로 밀려나 있는 재래적이고 통속적인 변두리 서사양식들을 도입함으로써 탄력적인 서사공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조동관 약전」 표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 동관이라는 이름이 똥깐으로 변한 데는 수다한 사연이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11쪽) 은척읍에서 이란성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난 깡패 조동관의 일화와 무용담을 그렸다. 형 은관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합기도 삼단, 유도 사단, 태권도 삼단으로 별명이 ‘조십단’이었다. 은척 역사상 불세출의 깡패 똥깐이 이름을 드날린 사건은 ‘역전 파출소 단독 점거사건’이었다. 동거하던 색골 연상이 집을 나가자 똥깐은 기차역과 큰길가의 가게 유리를 다 깨부수고도 분에 못이겨 역전파출소 유리까지 부수었다. 기동타격대에 체포되어 소년범으로 계절이 두 번 바뀌어서야 은척에 돌아왔다. 신임 경찰서장이 경찰간부를 대동하고 관할지역에 민정시찰을 나왔다. 은관과 똥깐 형제는 낮술을 마시고 읍내를 배회하다 시찰단과 맞부딪혔다. 신임 경찰서장에게 평생 처음 겪는 모멸과 수치를 안겨주고 형제는 집으로 돌아왔다. 은관은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되었고, 똥깐은 산으로 도망쳤다. 기동타격대가 산을 포위했고 폭설이 퍼붓는 가운데, 사흘째 밤이 지났고 똥깐은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는 열다섯살 소년이었다. 술취한 여자의 자동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한지 칠십일이 되었다. 목격자 택시기사가 뒷돈을 받고 경두에게 덤태기를 씌웠다. 여자는 병원비를 대면서 생색을 냈다. 경두의 어머니는 이혼하고 술집을 전전하다 경두를 낳았다. 경두의 꿈은 배달로 돈을 벌어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폭주한 것이었다. 앵벌이 두목 삼촌이 찾아온다는 밤에 경두는 병원에서 사라졌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아빠는 공사판의 ‘야간 방범’으로 일했다. 보안대 퇴역 상사로 군사문화가 몸에 배어 권위적이고 억압적이었다. 친구 일당과 술을 처먹고 사고를 일삼던 시절, 밤이 늦었고 비가 내렸다. 어쩌다 집근처까지 왔고 아버지가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친구들은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나눠먹고 용기를 내어 나를 들어 집안으로 들였다. 나가려는 친구들을 가로막은 아빠의 손에 네 홉들이 소주가 양손에 들려있었다. 나발을 분 아빠는 남자대 남자로 친구들께 소주를 따라 주었다. 내가 먼저 토악질을 했고, 아빠가 구토를 했고, 친구들이 떼거지로 오바이트를 했다.

「이인실」 병동 창가 침대의 장택근은 부산에서 주류도매상을 하는 팔십킬로가 넘는 깡패였다. 굵은 주름과 크고 작은 흉터가 얼굴을 덮었다. 그는 가녀린 체구의 아내를 노예처럼 다루었다. 수술을 앞두고 방광에 도뇨관導尿管을 끼우자 고통을 못 참고 생지랄을 떨었다. 병원은 도뇨관을 뺄 수밖에 없었고 의사는 수술을 포기했다. 아내에게 말기암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장택근 가족들은 퇴원 못하겠다고 농성에 들어갔다.

「통속」15년 만에 대학시절 여친 ‘리을’을 신도시 대형할인 매장에서 우연히 만나 대낮에 여관에 들어간 ‘기역’. 능숙한 엽색 행각과 야비한 사업수완을 자랑하며 동창들의 기를 죽이는 바람둥이 ‘미음’. 바람을 피우다 처남에게 들켜 속을 끓이는 공무원 ‘치우’. 미음은 중국 북경 골목 약방에서 구할 수 있는 성욕증진제로 여자들을 호리는 섹스중독자였다.

「유랑―취생옹醉生翁 첩실妾室 하세가와 도미코長谷川惠子의 봉별서逢別書」 서序―서書―후後, 고전적 형식과 의고체를 구사한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 작품.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허름한 선술집의 주모 도미코. 구석 탁자에서 그림자처럼 매일 탁주를 들이켜던 노인네가 뇌출혈로 고꾸라져 병원에 실려갔다. 팔월십오일 귀국을 도모하는 정신없는 부모가족과 떨어져 천애고아가 된 열다섯살 도미코를 구해 준 것은 가문의 종손 상공. 술과 기생으로 세월을 보내던 상공은 열여덟이 되면서 꽃처럼 피어난 도미코를 범한다. 왜녀는 상공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본실이 대동한 하녀들의 폭행에 유산했다. 도미코는 과부 술집 부엌 뒷방을 전전하다 전쟁 피난길에서 상공을 다시 만났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주막을 연지 스무해가 지났다. 무능력하고 불합리한 언행의 ‘상공’에 대한 극존칭의 존대와 지극한 연모를 정을 지닌 일본인 여인과의 교묘한 부조화를 그렸다.

「고수」 서序―대담對談―후後, 변형된 액자소설 형식으로 한 내기바둑꾼의 이야기를 그렸다. 구로공단 근처 허름한 기원에서 만난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애 손같이 정맥이 비쳐 보일 것 같은 손을 가진 내기 바둑꾼. 그는 고교생 바둑 국가대표로 국제전에서 삼년동안 진적이 없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기사를 꿈꾸던 그는 내기바둑에 빠졌다. 은행직원이 뒷배를 봐준 일생일대의 내기바둑에서 이기고 돈가방을 손에 넣었다. 내기바둑에서 진 사람은 십년전에 프로 바둑기사가 되었다. 신림동 여관 골목에서 돈가방을 들고 도박장에 들렀다가 난생처음 만진 도박에 빠져들어 삼일 만에 모든 돈을 털렸다.

「칠십년대의 철갑」대여섯명의 청년이 동정을 바친 미인 미야에 접근하기 위해 미야의 친구 향아를 만나는 원두. 스무살 시절 원두가 지방대생이었는데 반해 향아는 경찰 고위직 집안의 딸로 국립대생이었다. 향아는 여드름과 푸른 피부빛으로 철갑을 두른 것처럼 화장을 했다. 원두는 미야를 만나려고 향아와 억지 데이트를 하면서 정이 들었다. 향아는 나이가 들고 철갑이 엷어지면서 타고난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두는 여행을 떠나 향아를 안았으나 거들을 어쩌지못해 실패하고 만다. 향아가 결혼식을 앞둔 전날, 둘은 예전처첨 전기구이 통닭과 생맥주를 들이켰고 거들의 정체를 알게된다.

「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 일주일 전에 시집을 낸 제이는 의문의 여자 조운영의 전화를 받는다. 출판사가 담당기자를 붙들어 마련한 인터뷰를 끝내고 약속장소 아담한 찻집에 나갔으나 조운영은 오지 않았다. 영화회사 다니는 후배 와이를 만나 술을 마시는데 조운영한테서 술집으로 전화가 왔다. 뒤늦게 나타난 조운영은 자연스럽고 압도적인 미의 소유자였다. 술이 취한 제이는 그를 쫓아오겠다는 조운영을 떼어놓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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