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체호프 단편선
지은이 : 안톤 체호프
옮긴이 : 박현섭
펴낸곳 : 민음사
나는 80년대 후반에 러시아 문학을 처음 만났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소설은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어머니」,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1828-1889)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을 30년 세월이 흘러 손에 들었다. 단편소설의 개척자·완성자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의 소설을 이제 펼쳤다.
내가 잡은 책은 2002. 11. 20에 초판이 나온 출판사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70’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작품집은 1883-1902년 사이에 발표된 10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단편소설집 『사랑에 대하여』가 ‘세계문학전집 461’로 2025년에 새로 나왔다. 체호프의 작품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사소한 일상사를 재현함으로써 삶의 본질과 아이러니를 포착’했다고 한다. 표지그림은 유명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1884-88년 이었다.
「관리의 죽음」(1883) - 멋진 회계원 체르뱌코프는 오페라를 관람하다 앞좌석의 브리잘로프 장군의 뒤통수에 재채기를 했다. 침이 튀긴 것을 해명하고 거듭 사과했다. 장군은 자꾸 찾아오는 그를 귀찮아하면서 화를 냈다. 주인공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이 확대되는 것을 희극적으로 그렸다.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1992) - 친구 실린은 농장을 경영하면서 일에 지쳐 자주 녹초가 되었다. 나는 그의 아내 마샤와 불륜관계였다. 새벽에 마샤가 내방을 나섰을 때 실린이 나타났다. 실린의 불행은 삶의 불가해성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에서 비롯되었다.
「베짱이」(1891) - 올가는 결혼 후에도 허영심과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동호회원들과 방탕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의학계의 신성 남편이 죽고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드라마」(1887) - 무라슈키나는 바실리치를 찾아와 자기가 쓴 희곡을 봐달라고 떼를 쓴다. 바실리치는 몸이 극도로 피곤한데도 여린 성격으로 낭독을 듣는다. 그는 인간의 말이 의미없는 소음으로 바뀌는 기묘한 상황을 겪는다. 바실리치는 괴로워하다 문진으로 무라슈키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베로치카」(1887) - 통계학 자료를 모으러 N군에 지내면서 아그뇨프는 쿠츠네초프댁에 자주 드나들었다. 일이 끝나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길에 딸 베로치카가 배웅을 나왔다. 그녀는 사랑을 고백했고, 아그뇨프는 서툴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베로니카는 부끄러움에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남녀 관계의 영원한 불가사의를 다루었다.
「미녀」(1888) - 나는 김나지야 5·6학년 때, 할아버지와 길을 떠났다가 아르메니아인 마을에서 차를 따라주던 열여섯 가량의 미녀 마샤를 만났다. 대학시절 기차여행을 하다 어느 역에서 열일곱·열여덟살로 보이는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미녀를 보았다. 두 미녀를 보면서 나는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거울」(1885) - 시집가는 꿈을 꾸는 장군의 젊고 예쁜 딸 넬리는 섣달 그믐날 저녁, 약혼자를 꿈속에서 보았다. 남편이 티푸스에 걸려 앓아눕자 그녀는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도 전염지역에서 삼일만에 돌아와 티푸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의사를 집에 모시고 왔으나 남편과 똑같이 헛소리를 했다. 꿈속의 낯설고 비논리적인 세계를 독특하게 묘사했다.
「내기」(1888) - 늙은 은행가는 파티에서 젊은 변호사와 사형제도에 관해 논쟁을 벌이다 내기를 했다. 십오년을 독방에서 버티면 이백만루블을 주기로. 변호사는 기한만료 다섯시간 전에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고 창문으로 탈출했다. 그는 엄청난 독서와 구도의 노력으로 궁극의 진리에 이르렀다.
「티푸스」(1887) - 젊은 중위 클리모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면서 고열과 갈증에 시달렸다. 발진 티푸스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누이동생 카차는 이미 전염되어 죽었고 장례를 치른 지 삼일 째였다. 가사상태에서 벌어지는 이상현상을 묘사했다.
「주교」(1902) - 표트르 예하 주교는 스타로페트롭스키 수도원에서 저녁 미사를 마치고 판크라티옙스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주교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은 예배당 안에 있을 때 뿐이었다. 주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지난 삶과 닥쳐올 죽음을 응시했다. 예하는 장티푸스에 걸렸고 부활절날 죽었다. 한달 뒤에 새 대리 주교가 임명되었다. 그때는 이미 예하에 대한 생각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