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북치는 소년

대빈창 2011. 9. 5. 05:43

 

책이름 : 북치는 소년

지은이 : 김종삼

펴낸곳 : 민음사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표제시 ‘북치는 소년’(12쪽)의 전문이다. 나는 시인 김종삼을 즐겨 찾는 블로그 ‘야매댄서’의 글 「김종삼의 시 ‘북 치는 소년’과 ‘묵화’ :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를 통해 처음 알았다. 가난한 아이에게 서양에서 아름다운 카드가 날라 왔다. 북치는 소년과 양의 등성이에 내려앉는 반짝이는 진눈깨비가 그려진. 그렇지만 전쟁이 막 끝난 이 땅의 가난한 아이에게는 내용 없는 공허한 아름다움일 뿐이다. 언덕 위 바람벽이 허물어져 멍석으로 둘러 친 다 쓰러져가던 초가집의 가난한 아이. 크리스마스 날이 되면 또래들과 교회로 몰려갔다. 때국물로 얼룩진 동상으로 갈라진 손등이 부끄러웠다. 무명실에 꿴 강냉이 목걸이를 받아든 버짐투성이의 조그만 얼굴이 떠올랐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시 ‘묵화’(24쪽)의 전문이다. 이른 새벽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늙은 소와 할머니는 사래 긴 밭을 다 갈고 돌아왔다. 그렇지않아도 관절염으로 무릎이 성치않은 할머니의 종아리와 발등은 퉁퉁 부었다. 소처럼. 이 한폭의 ‘묵화’에서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 서글프고 아름다운 풍경도 이 땅에서는 말 그대로 묵화가 되었고, 농부와 소의 비명만이 울려 퍼진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물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 ‘민간인’(63쪽)의 전문이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인 1947년 봄. 월남하는 극한상황에서 울음을 터뜨린 영아를 용당포 앞바다에 수장.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수심은 알 수 없다. 분단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시퍼렇게 살아 펄떡이는 땅.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인간해방에 대한 신념이 ‘경제’를 살린다는 허울아래 30년 전 막장으로 되돌아가는 도착적인 이 땅.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시 ‘掌篇2’(65쪽)의 전문이다. 외롭고 가난하였던 시인. 뿌리내리지 못한 영혼의 소유자. 만년은 소주를 구걸하던 알콜중독자로 무연고 행려병자로 시립병원에 입원했었던 시인은 현재 송추 길은 성당묘지에 누워있다. 가난하고 외로운 하지만 아름다운 시집을 잡았다. 뒷표지를 덮는다. 서글프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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