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현대 고고학 강의

대빈창 2011. 9. 7. 05:49

 

 

책이름 : 현대 고고학 강의

지은이 : 콜린 렌프류·폴 반

옮긴이 : 이희준

펴낸곳 : 사회평론

 

주민자치센터의 대여용 책장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책 판형은210*255로 국배판인 A4보다 세로가 조금 짧다. 파라오 투탕카멘, 하늘도시 마추픽추, 신비한 마야 문명, 크메르의 앙코르와트 사원 등. 낭만적이고 스릴 넘치는 고고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흥미진진한 발굴기를 기대하며 책장을 펼쳤으나, 표제의 ‘강의’처럼 고고학의 세계를 개관한 입문서로서 학생들의 교과서로 제격인 ‘고고학 백과사전’이었다. 이 책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써 온 삽과 발굴용 꽃삽에서 인공위성 영상술, 지중침투레이더, 가속질량분석기를 이용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유전자증거 이용법등 새로운 기술과 방법 등 현대고고학의 최신 정보를 담았다. 저자의 말 속에 이 책의 성격이 잘 담겨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 깊숙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새로운 발견이 끊임없이 이뤄지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하는 방법과 그 답을 찾는 데 필요한 방법을 개발한 덕택’이라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1949년 미국의 화학자 윌러드 리비가 개발하였다. AMS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아주 미량의 표본으로도 연대측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88년 실시한 AMS 연대측정은‘토리노 수의’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스도의 실제 흔적이라고 진정으로 믿었으나, 14세기로 연대가 측정되어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수중고고학은 1853년과 1854년 스위스 호수들의 겨울동안 수위가 낮아져 엄청난 양의 나무기둥, 토기, 기타 유물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나의 책장에는 ‘문명의 종말’, ‘미래의 수수께끼’, ‘신의 지문’, ‘신의 거울’ 등 변두리고고학 책들이 꽂혀있다. 이 책들은 ‘운석과 천문적 사건들’과 ‘사라진 대륙’, ‘외계인이 건설한 초고대 문명’ 등 터무니없는 공상적 해석으로 대중들을 유혹하여 전통고고학자들은 ‘사이비고고학’이라 부른다. 이들은 인류의 진보가 외계 우주에 있으며, 초기 문명은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이론으로 그동안 고고학이 밝혀 낸 인류 역사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 깊이가 없었던 나의 젊은 한때의 부끄러운 독서의 자화상인 것이다.

‘골동품 수집가야 말로 진짜 도굴꾼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개발지상주의가 진짜 도굴꾼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의 졸속성으로 말미암은 문화재 파괴다. 이 초대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불과 4개월이었으니 문화재 조사는 당연(?)히 생략되었다. ‘문화나 종교, 예술에 대한 무지로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한다. 이는 민족대이동시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로마를 공격하면서 약탈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이 땅은 4대강 사업 구간에서 자해하듯 반달리즘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 의성 낙단보에서 국보급 마애보살좌상이 발파로 구멍이 뚫렸고, 세종대왕 영릉 문화재 보호구역은 지반침식이 우려되고, 백제의 국찰이었던 ‘왕흥사지’유적은 허가없이 개발행위가 이루어지고, 낙동강 하구 멸종위기종 서식지는 마구잡이 준설로 초토화되었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추가 정밀조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 땅의 문화재청과 한국농어촌공사는 크게 차이가 없다. 온 국토를 찢어발기는 개발로 국민들에게 발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철학인 것이다. 막장까지 간 토건공화국에서는 모든 것이 녹색성장이다. 정권까지 장악한 토건족의 시뻘겋게 돈독이 오른 충혈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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