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파문

대빈창 2026. 5. 7. 06:00

 

책이름 : 파문

지은이 : 김명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아직은 제 풍경을 거둘 때 아니라는 듯 / 들판에서 산 쪽을 보면 그쪽 기슭이 / 환한 저녁의 깊숙한 바깥이 되어 있다 / 어딘가 활활 불 피운 단풍 숲 있어 그 불 곁으로 / 새들 자꾸만 날아가는가

 

시집의 마지막 시 「따뜻한 적막」(96-97쪽)의 앞부분이다. 낯이 익은 시였다. 그렇다. 오래전 나는 시인의 시선집 『따뜻한 적막』(문학과지성사, 2006)을 잡았다. 첫 시집 『동두천東豆川』(문학과지성사, 1979)을 잡고, 아쉬움에 고른 책이었다. 시인 김명인(金明仁, 1946- )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파문』은 여덟 번째 시집으로 조지훈 시인을 기념해 제정한 〈지훈상〉의 제7회 수상 시집이었다. 부 구분없이 51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이숭원은 해설 「꽃뱀의 환각, 절정의 시간들」에서 말했다. “개성적 비유와 정밀한 묘사의 정신이 결합하여 삶의 표층과 이면을 하나의 화폭 안에 잔산처럼 펼쳐내는 독특한 표현미학을 실현 ”(100쪽) 했다.

시인의 시편들은 ‘하나의 사물, 한 곳의 장소에 붙박이기보다 길 위 혹은 어느 강가와 바닷가를 떠도는 편’을 택했다. 조치원읍 봉산동 향나무, 강구항 물양장, 진도 연육교, 강진 마량, 소매물도, 봉송 사거리, 하노이 대우 라운지, 대둔사 낙원장, 대흥사, 캄보디아 호텔, 고복저수지…

마지막은 시집의 두 번째 시 「조이미용실」(8-9쪽)의 후반부다.

 

좁은 미용실을 꽉 채우던 예전의 수다와 같은 / 공기는 아직도 끊을 수 없는 연줄로 남아서 / 저 배는 변화무쌍한 유행을 머릿결로 타고 넘으며 / 갈 데까지 흘러갈 것이다 그동안 / 세레라자데는 쉴 틈 없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 얼마나 고단하게 인생을 노 저을 것인가 / 자꾸만 자라나는 머리카락으로는 / 나는 어떤 아름다움이 시대의 기준인지 어림할 수 없겠다 / 다만 거품을 넣을 때 잔뜩 부풀린 머리끝까지 / 하루의 피곤이 빼곡히 들어찼는지 /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저렇게 쏟아져 나오다가도 / 손바닥에 가로막히면 금방 풀이 죽어버리는 / 시간이라는 하품을 나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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