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월에 부는 바람

대빈창 2026. 6. 25. 06:10

 

책이름 : 사월에 부는 바람

지은이 : 현기영

펴낸곳 : 한길사

 

‘제주 4·3’의 소설가 현기영(玄基榮, 1941 - ) 선생을, 처음 만난 작품은 중편 「순이 삼촌」이었다. 80년대 중반 『창작과비평 영인본』을 통해서였다.  87년 국민대항쟁은 〈한겨레신문〉 창간으로 이어졌고, 나는 선생의 연재소설을 찾아 읽었다. 세월이 흘러도 선생에 대한 존경은 식을 줄 몰랐다.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등 소설집을 손에 넣었다. ‘잠녀항일투쟁’을 다룬 『바람 타는 섬』, 제주 민중(방성칠란·이재수란)의 수난과 저항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를 찾은 세월이 오래 되었다. 세권짜리 대하소설 『제주도우다』(창비, 2022)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산문집은 『바다와 술잔』(화남, 2002),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다산책당, 2016)에 이어 세권 째였다. 작가의 삶과 문학을 아우르는 자전적 에세이였다. 『사월에 부는 바람』(2025)은 표지 카피가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 고향 땅 아픔 없이는 회상할 수 없는 고향’이었다.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제주 중산간으로 짐작되는 마을에 홀로 우뚝 서있는 팽나무였다. 제주 방언으로 ‘폭낭’이라고 불렀다. 원한 맺힌 가지들이 하늘로 치뻗은 나무는 4·3의 참상을 지켜 본 상징물이었다. 4부에 나뉘어 21편의 글을 담았다.

1부 ‘문학의 길’은 문학인 현기영을 조명했다. 4·3은 살과 피를 잃은 채 땅속 뼈로만 존재, 그 뼈를 발굴해내어 피와 살을 불어넣는 작업. 4·3은 모든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참혹한 사건. 정신적 가치를 박대당하고, 물질적 가치와 말초적 감각만 대서특필된 곳에 인간 본연의 모습은 없다. 4·3 대동란은 농사·목축을 위주로 하는 중산간 마을은 완전히 붕괴되어 한때 지도상에 지워졌다. 토벌대의 무자비한 삼광三光 작전(모두 죽이고, 모두 빼앗고, 모두 불태워라!)에 따라 초토화된 중산간 마을이 200여 개였고,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 일본제국주의든, 제5공화국이든 군사 파시즘을 만나면 총구와 군홧발의 압도적 힘에 본능적으로 매료되어, 자신을 해체시켜 그 권력의 일부가 되어, 해방과 자유를 경멸했던 미당 서정주.

2부 ‘사월의 노래’는 4·3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독재정권은 고문 위에서 세워지는 체제. 4·3 대참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멈춰 있는 것, 깊은 트라우마에 잠겨 지금의 시간이 아니라 그때를 살고 있었다. 용공조작으로 대량학살을 합리화했던 미국의 의도는 점령국이 외세를 반대하는 식민지 민중을 제압하는 책략, 이이제이以夷制夷 용병술. 역대 독재정권들은 4·3을 금기의 영역에 묶어놓고, 그 사건에 대한 도민의 집단적 기억을 폭력적으로 말살. 4·3은 해상봉쇄령 속에 전대미문의 참혹한 살육이 벌어진 제노사이드.

3부 ‘나를 부르는 소리’는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그렸다. 무한질주의 자본에게 자연이란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일시적 존재에 불과.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유년은 자연 속의 삶,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 청소년 자살자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수많은 4·3 떼죽음의 집단 후유증. 프랑스 6·8혁명 아나키즘 슬로건, “소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삶의 내용은 더욱 빈약해진다”. 해발 600미터 고지대 용눈이오름의 새와 억새로 뒤덮인 넓은 초원, 바람에 일렁이는 거대한 초록!

4부 ‘우리는 누구인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질문을 던졌다. 사회전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출신 지역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편협한 태도는 집단 나르시시즘. 한국전쟁때 미군의 대량 양민학살은 인종주의. 왜곡된 정치사는 민중의식을 냉소주의적·기회주의적 성향을 조장. 인간의 대의, 선과 악, 명예와 불명예의 판단을 타락한 시장의 통계에 맡겨버린 사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 BC 428/427년경-BC 348/347년경)의 말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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