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죄와 속죄의 저편

대빈창 2026. 6. 19. 07:00

 

책이름 : 죄와 속죄의 저편

지은이 : 장 아메리

옮긴이 : 안미현

펴낸곳 : 필로소픽

 

생지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환한,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 1905-1997)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2005),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Jean Amery, 1912-1978)의 『죄와 속죄의 저편』(길, 2012)을 나는 '아우슈비츠 3대 문학 작품'으로 꼽겠다. 이제 세 작품을 모두 읽었다.

내가 잡은 책은 10년 만에 나온 개정판 『죄와 속죄의 저편』이었다. 프리모 레비와 빅터 프랭클의 수기는 인간성을 박탈당한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의미와 가능성을 모색했다. 반면 장 아메리는 인간성을 박탈당함으로 인한 철저한 의미 상실과 불가능성을 직시하고 증언했다. 아메리는 기억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밑바닥을 낱낱이 드러냈다. 『죄와 속죄의 저편』에 실린 다섯 편의 에세이는 고문의 고통, 지식인의 무기력, 고향의 상실, 희생자의 원한, 아우슈비츠를 망각해가는 독일에 대한 비판 등을 담았다.

1장 정신의 경계에서. 지적인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천민 프롤레타리아트에 속했던 장사꾼과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지식인들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체력을 보여줌으로써 노동과정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가스처형실과 화장터가 있는 인접한 중앙수용소로 갈 때까지 견뎌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경건한 기독교인이거나 유대인들은 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이 아우슈비츠라는 악을 행했고, 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인간 도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장 고문. 벨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 1943년 7월 게슈타포에 체포. 첫 번째 구타는 수감자가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게 만든다. 브렌동크Beeendonk 요새의 창문 없는 둥근 천장의 지하 고문실. 고문전문가 소위 프라우스트praust가 내 몸을 1미터 정도의 황소채찍으로 내리치자 바지가 찢어졌고 피부가 터졌다. 벙커 천정에 롤러로 돌리는 체인이 걸렸고 강력한 쇠갈고리가 매달렸다. 등 뒤로 두 손을 묶은 수갑에 갈고리를 걸어 바닥에서 1미터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상완골이 어깨뼈에서 튀어나왔고 몸의 무게로 뼈들이 탈구되었다. 고문당한 사람은 경악으로 굳어져 속수무책 공포에 내맡겨졌다.

3장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 눈이 무릎까지 올라온 겨울철 아이펠 지역을 가로질러 밀수꾼들의 길을 따라 도주자 신분으로 벨기에로 들어왔다. 매우 운 좋게 안트베르펜에 도착, 비참한 망명생활이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뭔가 모호한 것을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전적으로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곳에서 안전하게 느낀다. 이런저런 사람이기 위해 우리는 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때 유지하고 있던 것을 사회가 철회하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

4장 원한. 원한은 희생자들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데, 서독의 공적 현장에서는 가해자나 다름없던 인물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극히 소수만이 저항운동에 관여했던 독일 정치가들이 얼마나 서둘러, 얼마나 열광적으로 유럽에로의 편입을 추구했는가. 나치 희생자들의 떠들썩한 화해와 제스처는 오로지 무감각증과 삶의 무관심이거나 억제된 진짜 복수욕의 마조히스트적인 변형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낳은 것이다. 사회성이란 오로지 사회의 안정만을 염려할 뿐, 훼손된 삶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5장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1935년 독일에서 막 통과된 뉘른베르크 법조항을 읽던 그 순간에 죽음의 위협,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특별한 역사적 감수성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존엄성을 박탈당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지킨다. 내 왼쪽팔 아랫부분에는 아우슈비츠 수감번호가 새겨져있다. 그것은 유대적 삶의 기본 공식보다 더 구속력이 있다.

장 아메리(Jean Amery, 1912-1978)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가톨릭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빈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작가의 길을 걷는다. 오스트리아가 제3국에 병합되자 벨기에로 망명한다. 프랑스에서 체포되어 남프랑스 귀르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1941년 도주했다. 벨기에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에 참여한다.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브렌동크 요새에서 친위대SS에 의해 심한 고문을 당했다. 아우슈비츠·부헨발트·베르겐-벨젠 수용소로 보내졌다. 1945년 4월말 연합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었고 벨기에 브뤼셀로 돌아왔다. ‘장 아메리’라는 예명의 Amery는 본명 Mayer의 철자를 뒤집어 만들었다. 1978년 찰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빈에 안장된 묘지명에 출생과 사망 연도 옆에 아우슈비츠 수감번호 ‘172364’가 새겨졌다.

‘자살 작가’, ‘불가지론자’,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상가’, ‘잃어버린 세대’ 등은 장 아메리의 삶과 사상을 나타내는 핵심어였다. 1978년 작가로서 절정에 있을 때 장 아메리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1978년 이탈리아 토리노 자택에서 프리모 레비는 투신자살했다. 생지옥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들은 여기지 않았다. 아메리는 말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들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도 공동의 과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려면 그에 대해 침묵하고 망각하는 대신 희생자와 학살자 사이에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드러내고 현실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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