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액체 현대

대빈창 2026. 6. 16. 07:00

 

책이름 : 액체 현대

지은이 : 지그문트 바우만

옮긴이 : 이일수

펴낸곳 : 필로소픽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한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폴란드계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의 책을 네권째 잡았다. 『액체 현대』는 세계적 지성의 대표작이었다. 2000년 첫 출간된 『Liquid Modernity』는 국내에서 『액체 근대』(강, 2009)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2012년 개정판을 펴내면서 『액체 현대』로 표제를 바꾸었다.

바우만은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질서와 규범이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안과 불확실성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했다. 정해진 형태를 유지하는 고체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가진 액체에 빗대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했던 근대에서 벗어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가 되었다. 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라는 다섯 가지 인간 조건을 각각 키워드로 삼아 현대사회가 기존의 근대사회와 어떻게 다른지를 논했다. 사회학자는 비판했다. “이익사회 시대에 공동체적 대안을 제공해주던 ‘민족’이 현재 무차별적 지구화의 결과로 이내 적대감과 투쟁의 주체로 변질됐다.”

1장 해방. ‘해방’은 제반 운동을 가로막거나 왜곡하는 특정 유형의 족쇄로부터 풀려난다는 것, 즉 나아가거나 행동할 자유를 느끼기 시작함을 뜻한다. 자유롭다는 느낌은 의도했거나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어떠한 방해나 장애, 저항 혹은 곤경을 겪지 않음을 뜻한다. 영국 시인·평론가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 1822-1888)가 말한 ‘대중문화’는 달콤하고 가벼운 것에 대한 열망과 이것들이 우세하도록 만들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곳곳에 여흥과 쾌락에 대한 갈증을 심어놓은 ‘문화산업’으로 말미암은 집단적 두뇌손상. 감시탑이 있어서 수형자들이 잠깐 동안이라도 감시자가 경계를 늦추는 순간을 기대할 수 없는 원형감옥, 단 한시도 졸음에 빠지는 법없이 항상 예리하고 신속하게 충복에겐 포상을 내리고 불복하는 자에겐 처벌을 내리는 ‘빅 브라더’, 여러 실험 조건들 속에서 인간들이 어디까지 순응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실험한 콘츠라거(Konzlager, 2차 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 현대판 악마들의 판테온 구 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라크Gulag. 사회적으로 위험과 모순은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그것들을 해결한 의무와 필요는 계속 개인 차원의 문제가 되어간다.

2장 개인성. 프랑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헨(Daniel Cohen, 1953-2023)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은 그 경력이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와 정반대로 포드와 르노Renault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면 그 사람의 경력은 같은 곳에서 끝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찾아내어 그 능력을 극대화하고 그것이 가장 잘 적용될 만한 목표들을 고르는 일은 이제 개인에게 달려있다. 생산자 사회가 그 구성원이 지켜야 할 기준으로 건강을 내세웠다면, 소비자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이상적이고 균형잡힌 몸매를 보여주느라 호들갑을 떤다. 프랑스 철학자 이브 미쇼(Yves Michaud, 1944- )는 “기회들이 과도해짐에 따라 파멸과 파편화, 해체의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

3장 시/공간. 오늘날 ‘공동체’라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에 대한 구시대적 유토피아의 최후 유물이다. 공동체는, 그 꿈이 얼마 남아있지 않더라도 공존공생이라는 규범을 준수하며 더 나은 이웃들과 더 나은 삶을 공유하려고 꿈꾸는 것을 뜻한다. ‘소비 공간’으로서의 여행은 쇼핑 경험 그 자체처럼 영원히 ‘다른 어딘가’가 되어버린, 이제는 없어져서 뼈아프게 그리운 어떤 공동체로서의 여행인 셈이다. 시간이 공간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창의력과 기술사용 능력에 종속된 점이야말로, 시간을 공간 정복과 영토 점유의 도구로서 공간의 대립항 자리에 놓은 것이야말로 근대의 시작에 대한 가장 좋은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일종의 허구이며, 우리 시대는 그 허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4장 일. ‘진보’은 역사의 어떤 특징이 아닌, 현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가장 심오하고 아마도 유일한 진보의 의미는 두 가지의 상호 밀집한 신념,‘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신념과 ‘어떤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우리’라는 신념으로 구성된다. 일은 더 이상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사명을 지니도록 원대하게 계획된 것도, 평생의 천직이라는 웅장한 의도를 지닌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일은 이제 사람이 자신을 정의하고 정체성이나 평생의 계획들을 설정하고 수정할 때 중심이 되는 확고한 축을 제공하지 못한다. 또한 이제 더 이상 그것은 사회의 윤리적 기초 혹은 개인의 삶의 윤리적 축이라고 손쉽게 간주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다니엘 코헨의 지적은, “국가 간 불평등 현상은 최근에 발생한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이 형상은 최근 두 세기 동안의 산물이다.”

5장 공동체. 사회학적으로, 공동체주의는 현대 삶의 가속화되는 ‘액화’에 대한 지극히 예상 가능한 반응, 개인의 자유와 안정 사이의 깊어만 가는 부조화에 대한 반응이다. 전후세대에게 안전장치의 공급은 빠르게 위축된 반면, 개인 책임의 크기는 전례없는 규모로 급증했다. 지구화는 공동체간 평화로운 공존이 아닌, 적대감과 투쟁을 악화시키는데 훨씬 더 성공하는 것 같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작가 필리프 코헨 (Philippe Cohen, 1953~2013)은 공동체주의 추종자들이 쓴 여러 저작들을 검토하여, “동시대인들의 삶의 고난들에 대한 치유책으로 그들이 칭송하고 추천하는 공동체들이 해방의 잠재력을 지닌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아원이나 감옥 혹은 정신병동 같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을 읽는 사람  (0) 2026.06.18
시와 물질  (0) 2026.06.17
남쪽으로 튀어!  (1) 2026.06.15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강의  (0) 2026.06.12
우리 문화 이웃 문화  (0) 2026.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