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타미 준 나의 건축

대빈창 2026. 6. 26. 07:00

 

책이름 : 이타미 준 나의 건축

지은이 : 이타미 준

옮긴이 : 김난주

펴낸곳 : 마음산책

 

벌써 20여년 저쪽의 세월이 되었다. 그시절, 나는 출판사 《학고재》에서 출간된 책은 무조건 손에 들었던 시절이었다. 건축의 문외한이 『돌과 바람의 소리』(2004)를 그렇게 만났다. 한국 이름 유동룡(庾東龍, 1935-2011)은 2003년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을 수훈했다. 2009년 일본의 권위 있는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재일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디아스포라 건축가로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첫 한국 방문 당시 이타미 공항에서 타미伊丹를, 친하게 지내는 작곡가 길옥윤의 潤을 따서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서문을 쓴 유이화(庾離花, 1973- )는 이타미 준의 딸이자 후배 건축가였다. 딸은 아버지를 회상했다. “건축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맥과 전통성 위에서만 현재의 리얼리티를 이룰 수 있다. 나아가 건축이 사회의 요구와 감각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10쪽)

건축가 이타미 준은 지역의 고유한 풍토에 천착하며 불, 바람, 흙과 같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독창적 건축 체계를 구축했다. 2002년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사무소를 설립하고, 부녀는 주요 건축 작업을 함께 했다. 2011년 아버지가 갑자기 타계했고, 딸은 아버지의 흩어져있던 원고와 자료를 모았다. 197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쓴 글들, 설계 스케치, 작업현장 사진 등을 다채롭게 수록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서부터 조선 건축과 예술에 대한 탐구, 영감을 주고받은 동시대 건축가·예술가들과의 교류, 설계의도와 건축가의 철학까지 아울렀다. 4부에 나뉘어 54편의 글이 실렸다.

1부 이타미 준, 유동룡. 빨간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붉은 색 기조의 구상적인 풍경이 아니라, 빨간 추상화를 보는 듯 한 그림 〈from sea〉(2001). 농학자 우에사의 유품처럼 남은 이이쿠라 거리 풍경. 형태와 색, 성질 또한 완벽한 두부. 좁고 보잘 것 없는 공간이나 따스한 시정詩情이 넘치는 술집 온자쿠. 일본에서 찻잔으로 격상된 조선 막사발. 음식에 대한 미적 감각을 도입하는 것은 일본음식 문화의 특기이자 예법. 멀고 오랜 기억의 이미지, 인사동 ‘학고재’.

2부 조선에 살다. 한민족이 모여 사는 마을은 하늘과 땅의 기본 이념에 따라 이어진 공동체, 자연에 저항하지 않는 유기체. 종묘는 종교적 의미의 최소한의 건축이며, 울려 퍼지는 제례악에 감동하면서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연구 공간. 조선의 ‘선線’은 장인의 숨결의 선이며 더없이 무구한 선. 아무 문양도 꾸밈도 없는 백자를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구워낸 민족. 조선의 민화는 생활공간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특수성. 만든 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생활 감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가구라야 진정한 가구. 소박함과 불완전함이 오히려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조선 도자기. 고급스런 조선 가구의 미묘함과 절묘함의 조형 감각. 일본 북디자이너 히라도 고가(平野 甲賀, 1938-2001)와의 대담―조선 민화 ‘글자 그림’의 디자인 ‘글자의 힘’에 대하여.

3부 영감의 탄생.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빌라 사보아·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1926-1992)의 런던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부 건물. 인간애와 자민족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건축물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건축의 밑그림으로 여겨졌던 드로잉을 예술가로서의 건축가가 설계와는 다른 감각으로 임한 하나의 예술, 현재 아트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작품으로 인정. 건축이 빚어내는 빛과 그림자를 지속적으로 추적한 사진가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1928-2016)의 『사진 도시』. 단정한 형태, 조화의 명쾌함, 치밀한 계산에 따른 디테일 조각가 하야미 시로(速水 史郞, 1927- ). 한국에서 건축과 자연을 어우르는 첫 건축가 김중업(金重業, 1922-1988). 순수한 추상미술은 차세대 현대미술에 다양한 이미지를 선사, 화가 곽인식(郭仁植, 1919-1988). 전통을 정신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획득하고 추출한, 예술가 시라이 세이이치(白井晟一, 1905-1983).

4부 나의 건축. 밝음과 어둠의 미묘함 사이에 있는 상태를 막연하게나마 시도한, 건축가 아틀리에 〈먹의 집〉. 크고 작은 밋밋한 상자가 마주보는 형태, 마당의 반지하 서재가 마주보이는 건축가의 집 〈여백의 집〉. 100년전 영국 벽돌로 지은 교회의 철거된 벽돌과 요코하마만의 낡은 거룻배를 건축자재로 사용한 아오야마 펍 레스토랑 〈트렁크〉. 『PA 준 이타미: 세계건축가 3』에 실린 건축가 차기설과의 대담. 흙은 시간의 두께인 동시에 지역성에 뿌리 내린 건축가의 사상 〈온양미술관(현 구성아트센터)〉. 지역의 돌, 철광석이 섞인 아지석庵治石으로 쌓은 벽, 흙과 돌의 조각가 하야미 시로의 아틀리에 〈조각가의 아틀리에〉. 버려진 돌로 쌓은 건축,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서울의 〈각인 탑〉. 벚나무와 대나무의 앙상블, 건축가의 아틀리에·주거공간 〈먹의 암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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