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지은이 : 이연식
펴낸곳 : 아트북스
‘일본미술 이해의 길잡이’라는 시공사 출간의 얇은 책자가 그동안 내가 잡았던 유일한 일본 미술 관련 서적이었다. 그 책은 10여년 전 음악잡지 편집장을 하는 사촌 동생의 집에 들렀다가 발견한 책이었다. 정리벽이 한심했던 동생의 어지럽게 널려지고 겹쳐지고 쌓여있던 수많은 책 중에서 용케 내 눈에 뜨였다. 오늘의 이 책을 잡게 된 인연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책 표지 이미지의 강렬함 때문이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의 36 경치’ 중 그 유명한 ‘가나가와의 파도’로 1831년 경 제작된 판화였다. 세월은 흐르고, 나의 잠재의식 속에 내장되어 있던 그 목판화 때문이었는 지 ‘우키요에'에 유혹당하고 말았다. 이 판화 그림은 멀리 후지산이 중앙에 자리 잡았고, 거대한 파도가 두 척의 배를 집어 삼킬 듯 한 역동적인 구도가 압권이었다.
‘우키요에’는 ‘에도’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에도는 도요토미 사후 절대 권력자 쇼군의 권력을 쟁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성한 인공수도로 오늘날의 도쿄다. 여기서 우키요에는 에도시대(1603 ~ 1867년)의 풍속화로 우리식 한자로 읽으면 ‘浮世會’로 ‘신이 나서 들뜬 상태’로 현실향락주의적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는 낯선 그림인 우키요에 작품 120여점이 도판으로 실려 있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 그림 기법, 화가들의 삶과 역사가 저자의 박식한 해설을 따라 에도시대를 여행할 수 있게 꾸며졌다. 우키요에는 현세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대중을 위한 값싼 미술로 판화로 제작되었다. 그때 유럽은 중국 도자기에 열광했는데, 17세기에 명왕조가 청왕조에 무너지면서 도자기 수출이 중단되었고, 대신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소개되었다. 도자기가 깨지지 않게 틈을 메우는 완충제로서, 흔한 우키요에 판화그림이 구겨지고 뭉쳐져 있던 것이 유럽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상파에 대한 일본 미술의 영향’을 얘기하는 ‘자포니즘(japonisme)의 출발이었다.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와 파격적인 구도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모네는 자신의 집을 우키요에 미술품으로 장식했고, 정원에 일본식 다리를 놓았다. 드가는 호쿠사이의 ’호쿠사이망가‘의 모티프를 차용했고, 고흐에게 좋은 것, 훌륭한 것, 이상적인 것은 모두 일본에서 온 것이었다.
우키요에 화가 중 ‘샤라쿠’는 1794년 5월에 나타나 8개월 동안 150점의 판화를 남기고 자취도 없이 사라진 의문의 인물로 그의 행방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지금도 난무한다. 그중 한 가지로 한·일 비교문화연구소의 이영희 교수는 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서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하는데, 마침 그 시기가 조선에서 김홍도의 활동이 없었던 때였다. 이 가설을 한국인들은 기정 사실인양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임나일본부설‘의 황당함을 수치스럽게 여기듯이 일본인들 또한 그렇게 대할 것이다. 에도는 1868년 도쿄로 이름이 바뀌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발맞추어 ’우키요에가 담은 에도의 환상, 에도의 욕망이 빛어 낸 우키요에‘도 뒤따라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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