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찬바람을 이긴 푸른 새싹은?

대빈창 2011. 11. 21. 03:39

 

 

 

밭을 둘러 싼 낮은 능선의 침엽수 잎색은 탁합니다. 키작은 관목 활엽수림은 벌써 잎사귀를 떨구었습니다. 밭둑의 잡풀은 억센 대궁만 찬 바람에 몸을 흔듭니다. 성큼 초겨울이 다가왔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바람이 땅바닥을 할퀴고 있습니다. 시절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밭 가득 푸른 새싹이 눈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먼저 고인이 된 왕회장이 떠오릅니다. 막장까지 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세상은 고통의 신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이 땅 산업화·근대화를 이끈 전설답게 요즘 그가 미디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 대 99, 양극화의 심화, FTA 등등. 가난하여 약한 자들이여 힘들다고 아우성치지 말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초인적인 의지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토대를 닦은 그를 본받으라고 연일 미디어는 악다구니를 칩니다. 한겨울 이 땅을 방문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푸른 잔디밭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들 우두망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왕회장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작물의 씨를 드넓은 공터에 뿌렸습니다. 바로 보리입니다. 어느 책 귀퉁이에서 눈동냥한 대목인 지. 온 국토을 병영화하고 종신 총통제를 노리다 비명횡사한 검은 선글라스의 주인공이 통치하던 시절, 학생이 제자이기는커녕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폭력을 일삼던 어느 선생의 생각 없는 훈시 말씀이었는지. 아니면 고인이 되어서도 어려움에 처한 조국의 경제를 살리려, 몸소 친히 납시신 왕회장 본인의 말씀이었는지. 아무튼 제 뇌 주름의 한 구석에 또아리를 튼 묵은 기억임에 틀림없습니다.

위 이미지는 볼음도 이장님의 겨울 밭에 보리가 심겨진 그림 입니다. 보리하면 저는 우선 도시락이 떠오릅니다. 아니 벤또입니다. 분식장려. 허여멀쑥한 얼굴과 고운 때때옷의 읍내 아이들도 예외일수는 없었습니다. 앙증맞은 플라스틱 도시락에는 어김없이 누리끼리한 보리밥이 담겨졌습니다. 하지만 보리는 겉만 살짝 덮었습니다. 한 꺼풀 벗겨내면 하얀 쌀밥이었습니다. 볼품없이 찌그러진 누런 벤또의 색깔보다 탁한 보리 투성이의 혼식은 기계충과 버짐 투성이 아이들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하긴 말이 좋아 웰빙이지, 남은 굶고 있든 말든, 자기 몸뚱이 하나 아끼자고, 이 외딴 섬까지 쳐들어와 눈에 뜨이는 야생초를 닥치는 대로 캡니다. 그 탐욕이 볼성사납습니다. 어쨌든 농민들의 6월은 더욱 고되졌습니다. 보리와 벼. 이모작을 짓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보리을 베어 낸 논에 생육기간이 짧은 조생종 올찰을 심습니다. 정말! 6월 한달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보리를 베고, 말리고, 방아 찢고, 포장하고, 소비자에게 찾아가 직접 판매하고, 논을 갈고, 써레질하고, 벼 모내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부지깽이 손도 빌릴 지경입니다. 웰빙으로 보리 인기가 급상승한 요즘 시골의 초여름 풍경입니다. 도시인들이 제 몸 위한다고 보리를 찾는 바람에 농민들의 주름살이 조금 펴졌을까요. 글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