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감나무가 모든 잎을 떨구고, 까치밥만 잔뜩 매달았습니다. 봉구지산 자락에서 최대한 줌인으로 잡은 이미지입니다. 서도교회가 감나무를 배경으로 바싹 다가섰습니다. 작년 겨울은 20년 만에 주문도 앞바다에 얼음이 날 정도로 추웠습니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한 과수 중의 하나입니다. 봉구지산을 등지고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느리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감나무는 수령이 50살 정도 되었습니다. 쌓인 연륜만큼이나 슬기롭게 추위를 이겨내고 가지가 부러져라 홍시를 잔뜩 매달았습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감나무는 겨울을 나면 고욤나무로 변합니다.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개량종 감나무는 고욤나무 대목으로 접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접을 붙인 감이 달리는 줄기가 동해로 얼어 죽으면, 추위에 강한 고욤나무 대목에서 새로운 순이 자라나 고욤을 달기 때문입니다. 고욤의 씨는 감 씨와 똑 같습니다. 다만 고욤은 과육이 발달하지 못해 엄지손톱만한 과실에 씨만 가득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 분명합니다.
감나무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가는 중턱에 잠자리채가 매달렸습니다. 감을 따는 도구입니다. 마을 할아버지가 며칠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시다가 힘에 붙이시는 지 포기하셨습니다. 하긴 감나무에 올라갈 개구쟁이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섬마을입니다. 할아버지께는 너무 위험스런 감 수확입니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 부러지기가 쉽습니다. 어릴 적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진 악동들은 거의 감나무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찬 겨울의 허공에 무수히 매달린 홍시는 온전히 텃새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철새들은 논바닥에 떨어진 알곡을 주워 먹습니다. 위 사진은 까마귀가 시린 부리로 감을 쪼는 장면을 포착하다 실패한 이미지입니다. 보기보다 까마귀의 신경은 날카로웠습니다. 멀리서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까마귀는 어느새 눈치를 채고 날개를 폈습니다. 이런 줄 알았으면 까치라도 찍었을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초겨울 시린 허공에 매달린 홍시의 주인공은 까치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때는 까치가, 어느 때는 까마귀가, 운이 좋으면 한 나무에서 까치와 까마귀가 함께 홍시를 쪼기도 합니다. 가끔 박새나 참새도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산비둘기도 덤벼들지 않았을까요. 새 두 마리가 가지에 앉는 것을 보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저도 나뭇가지와 새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감나무는 다름 아닌 텃새들의 겨울 식량창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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