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임진년 첫날, 봉구지산에 들다

대빈창 2012. 1. 2. 02:34

 

 

 

 

새해 첫날, 두툼하게 차려입고, 디카를 챙기고, 등산화 끈을 조입니다. 점액질 같은 끈적한 대기의 어둠에 푸른 기운이 천천히 삼투압 현상처럼 스며듭니다. 산길은 잔설로 이른 산행에 희끄무레한 길을 내주었습니다. 지난해의 첫 산행은 폭설로 악전고투한 기억 때문인지 올 겨울은 눈이 드물게 느껴집니다. 여명의 푸른 기운에 어둠이 점차 엷어 집니다. 마른 잎사귀를 매단 으름덩굴이 나목을 칭칭 감았습니다. 어쩌면 용트림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고라니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녀석들도 새해 첫날, 어디인가 모여 새로운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정에 자리 잡은 개복숭아 서너 그루가 가지를 제멋대로 뻗쳤습니다. 골다공증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열매를 달면 설탕에 쟁여 어머니 약으로 쓸 생각입니다. 하늘과 바다가 한 색깔로 뭉퉁그려 구분이 안 됩니다. 하늘은 무겁고 침울한 낮으로 바다로 내려오고, 바다는 수평선의 경계를 지으며 하늘과 몸을 섞었습니다. 60년만의 흑룡해라고 합니다. 용의 조화인가 봅니다. 새날이 터오면서 하늘가를 물들이는 색들의 향연을 올해는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흑룡의 탁한 색으로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일출을 포기하고 저는 산 아래 마을을 렌즈에 담습니다. 반딧불이 같은 가로등 몇이 안개 속에 졸고 있습니다. 섬 마을은 포근한 안개이불에 덮여 새해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때 뱃고동이 길게 울렸습니다. 임진년 첫 출항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저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날빛이 밝아오면서 서도 군도의 섬들이 점점이 떠오릅니다. 올해도 이 작은 섬들에 공사판의 굉음이 얼마나 울려 퍼질까요. 햇살을 튕겨내는 굴삭기 삽날이 바로 개발이고 번영이 된지 오래입니다. 교동도 다리 공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석모도 다리 설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토건족의 먹이감으로 서해상의 작은 외딴 섬들이 가시권에 들어선 것입니다. 땅을 소유한 섬 주민들은 어서 개발의 삽날이 춤을 추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땅 판 돈으로 목돈을 쥘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이 땅의 자연은 다만 개발이 유보된 땅일 뿐입니다. 섬사람들이 설레이고 있습니다. 흑룡해의 대박이 터지기를 고대하며 새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조국의 힘찬 발걸음이 올해라고 예외일수는 없겠지요.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들은 혼자 살아갈 것을 안다  (0) 2012.02.13
아차도의 전설  (0) 2012.01.11
대빈창의 일몰  (0) 2011.12.27
겨울 감나무는 텃새들의 식량창고다  (0) 2011.12.07
찬바람을 이긴 푸른 새싹은?  (0) 201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