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아차도의 전설

대빈창 2012. 1. 11. 06:02

 

 

 

육지에서 천년, 바다에서 천년동안 산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드디어 승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던 이무기를 임신한 여자가 보게 됩니다. 이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일편단심 용이 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참아냈는데, 아차하는 순간 도로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용이 되려다 떨어진 이무기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 섬을 아차도라 부릅니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아차도 형성설화입니다.

위 이미지는 강화도와 서도(西島) 군도(群島)의 도선인 삼보12호가 볼음도를 돌아 아차도와 주문도가 마주보는 협해에 들어섰을 때 선상에서 잡은 그림입니다. 그림에 잡힌 마을 전경이 아차도에 사는 살림집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25가구에 44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학교였던 초등학교 분교는 오래전에 폐교가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아기 울음소리 그친 섬마을입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대처로 나가고, 나이 들어 고향을 떠날 수 없는 노인네들만 남았습니다. 주민들은 농협이나 민원을 보시려면 면소재지인 주문도에 건너 가셔야 합니다. 언제인가 말씀드렸듯이 서도는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서해상 군도입니다. 그 4개의 유인도 중 아차도의 크기가 가장 작습니다. 논 면적은 고작 만평도 안 됩니다. 밭작물로 고구마와 고추를 심습니다. 매일을 하루같이 살아오신 어르신네들의 익숙한 손길이 많이 가는 채소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서도 면소재지는 아차도였습니다. 일본이 이 땅을 강제점령하면서 근대식 행정조직 체계를 강제합니다. 1905년 서도 최초의 면사무소는 아차도에 설치되었습니다. 1936년에 면사무소는 주문도로 이전하게 됩니다. 예전의 번성을 회상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이 작은 섬에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했지. 집이 얼마나 빼곡했으면 선창에서 지금 동네까지 처마 밑으로 가면 비 한 방울 안 맞았어.”

“그땐 배가 얼마나 많았던지 주문도와 아차도는 맞댄 배위로 옷에 물 한 방울 적시지 않고 건너 다녔어.”

그렇습니다. 어족자원이 풍족하던 시절, 어업전진 기지의 중심지는 아차도였습니다. 현재도 그 흔적은 남아, 아차도는 4개의 섬 중에서 고기잡이 어선이 가장 많습니다. 보리가 팰 무렵에는 밴댕이와 병어, 바다가재, 꽃게를 잡고, 추석 무렵에는 새우젓을 잡아 쌀을 삽니다. 하지만 아차도는 점점 고기가 귀해지면서 사람도 귀해진 외딴 섬이 되었습니다. 그 처량한 신세를 빗댄 새로운 설화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주문도와 아차도 사이의 바다에 있는 여의 이름이 ‘큰매여’와 ‘작은매여’입니다. 여는 물이 밀면 물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고, 물이 썰면 나타나는 바위를 이릅니다. 그 생김이 매를 닮아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아차도의 꽃치산 생김이 꿩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꿩은 매가 무서워 알을 까고 나서도 세상에 나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