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새 식구를 들였습니다. 강아지 이름은 ‘흰순이’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의 이름을 무조건 수놈은 진돌이, 암놈은 진순이라는 오랜 전통을 깬 놈입니다. 그것은 진순이가 터줏대감으로 아직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룻강아지 흰순이가 서해의 조그만 섬 주문도에 온 지는 사나흘 밖에 안됐습니다. 진순이처럼 흰순이도 태생이 뭍입니다. 인천에 사시는 작은 형님이 지인을 통해 진돗개 트기 자매를 누이동생 손을 통해 섬에 들였습니다. 한놈은 흰순이와 봉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웃사촌인 감나무네 집으로 분양되었습니다. 아직 바람이 찬지라 어린 흰순이를 한데에 내놓지 못하고 봉당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흰순이의 집은 설날 선물로 들어 온 과일상자에 헌 옷가지를 깔았습니다. 젖을 이제 막 뗀 흰순이의 행동은 어리버리합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오줌 마렵다고 앙알대지도 못하네’ 어머니 말씀입니다. 개밥그릇으로 쓰이는 낡은 냄비에 끊인 밥을 부어 주면서 가엽다고 어머니가 혀를 차십니다. 어리지만 흰순이는 밥을 그런대로 탐합니다. 봉당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흰순이가 상자에서 기어 나와 냄비에 코를 박습니다. 사람이 들어서면 무조건 먹을 것을 주는 것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리 사이로 몸을 비집습니다. 사람만 눈에 뜨이면 다리에 온 몸을 칭칭 감습니다. 대소변을 봉당 바닥에 보아, 어머니의 손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봉당은 우리 집에서 가장 따듯한 곳입니다. 옥상에 설치된 보일러의 온수가 봉당을 거쳐 내실 각 방으로 파이프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날이 풀려야 흰순이가 뒷일은 밖에서 보겠지요.
‘개들은 혼자서 살아갈 것을 아나 보다.’어머니의 말씀 이십니다. 순둥이 흰순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강아지들은 낯선 환경으로 며칠 몇 날을 낑낑! 거리고 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흰순이는 옹알거리지도 않습니다. 어머니가 기거하는 안방과 봉당은 바람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신 어머니가 흰순이의 첫밤을 지낸 낌새를 말씀하십니다. ‘딸깍, 딸깍, 딸깍! 딱 세 번 소리가 나더라.’ 봉당 입구의 발디딤돌에 흰순이가 올라섰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제가 문을 밀치자, 흰순이가 저를 쳐다보며 ‘왕!’ 외마디로 짖었습니다. 흰순이는 벙어리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에 들인 가축을 대하는 어머니는 정말! 한 가족처럼 염려와 보살핌으로 대합니다. 그러기에 흰순이의 어린 시절은 분명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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