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대빈창 2011. 12. 14. 03:53

 

 

 

책이름 : 보이지 않는 도시들

지은이 : 이탈로 칼비노

옮긴이 : 이현경

펴낸곳 : 민음사

 

생소한 작가다. 이탈리아의 대표작가다. 1923년 쿠바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하였고, 1985년 시에나에서 죽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는 사실이다. 앉은뱅이책상의 노트북을 두드리다 고개를 돌려 책장을 둘러본다. 외국소설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국내소설만 잔뜩 책장을 메웠다. 나의 편식은 지독하다. 그만큼 나의 책읽기에서 서양소설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 흔한 장식용 고전소설도 없다. 톨스토이 단편선 2권도 2년이 지났건만 아직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민음사간 보르헤스 전집 5권과 마르케스의 단편선 ‘꿈을 빌려 드립니다’와 하루키의 단편선 2권과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그동안 나의 손을 거쳐 갔을 뿐이다. 블로거 야매댄서가 권한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도 하염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탈로 칼비노의 후기 대표작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손에 넣고, 급하게 책씻이를 하였을까. 작고하신 '사회적'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영향이었다. 나는 ‘사람·건축·도시’를 잡고, 이 책과 ‘서울 이야기’를 함께 구입했다. 그리고 생소한 이탈리아 작가 소설부터 들추었다.  ‘사람·건축·도시’에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 바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그동안 잡은 소설들 중 가장 충격적인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국내소설에선 천명관의 ‘고래’를 꼽겠고,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서양소설에서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그것은 기존 소설들에서 보아왔던 나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 장편소설은 줄거리도 없고, 딱히 주인공도 없다. 또한 서사도 없이 묘사만 있을 뿐이다. 200여 쪽 남짓한 소설 속에는 ‘상상의 도시’들만이 등장한다. 소설은 퇴락해 가는 제국 타타르의 늙은 황제 쿠빌라이 칸과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황궁의 정원에 앉아, 자신이 여행했던 세계의 도시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전부다. 소설은 모두 9부로 구성되었는데, 그 사이에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가 끼여 드는데, 앞뒤 연결되는 부에 등장하는 도시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처음과 끝. 1부와 9부에는 10개의 도시를 묘사하고, 2부부터 8부까지 5개 도시가 등장하여 거미집 같은 도시 옥타비아, 공기대신 그 자리를 흙이 차지하고 있는 도시 아르시아 등 총 55개의 이야기로 짜여졌다. 또한 각 부의 소제목은 ‘도시의 기억, 욕망, 교환, 기호들, 이름, 눈들, 하늘, 섬세한, 죽은 자들, 지속되는, 숨겨진’의 11개의 카테고리가 각 부에 골고루 나누어져 엮였는데, 숫자들을 역순으로 배치한 것이 흥미롭다.

소설의 대단원은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에서 뉴아틀란티스, 유토피아, 태양의 도시, 오세아나, 타모에, 뉴하모니, 뉴래너크, 이카리아 같은 이상향과 에녹, 바빌로니아, 야후의 나라, 부투아, 뉴 월드 같은 역(逆) 유토피아가 등장한다. 여기서 마르코 폴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207~208쪽)’고 답한다. 나는 여기서 생태적 파멸로 인한 인류의 파국을 염려한다. 한 사람이 노예 100명을 부리는 꼴인 값싼 석유문명은 조종을 울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풍요에 길들인 편한 몸뚱이는 오일피크 정점을 지나면서 증가하는 고통의 강도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대체에너지는 무책임한 마타도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기술만능주의는 꿈일 뿐이다. 생태 지속가능한 ‘자급소농공동체’로 돌아간 인간만이 생존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문명의 풍요는 인류의 일장춘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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